"품이 맞으면 어깨가 넓고,어깨가 맞으면 허리가 짧고..."

의류업체들의 하계세일이 시작되면서 국내 의류메이커들의 "주먹구구식"
옷만들기가 또다시 문제가 되고있다.

평상시보다 값도 싸고 더러는 디자인도 괜찮은게 있어 매장에 들어가봐도
도대체 몸에 제대로 맞는 옷이 없기 때문이다.

팔리지않은 재고를 "떨이"하는 세일이라 그럴수 밖에 없지않느냐고 이해하
고 넘어갈 수도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의류업체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옷을 만들면 결국은 그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내의류업체들이 제값을 받고 파는 제품은 통상 3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머지는 재고로 쌓여 시즌 후반이나 다음해에 세일제품으로 판매된다.

국내 업체들이 재고부담이나 세일로 판매되는 제품의 비중을 감안해 정가
를 책정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국내 의류가격이 턱없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C상사 최모이사는 밝
혔다.

국내 의류업체가 주먹구구식 생산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
엇인가.

원인은 소비자들의 체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있다는데 있다.

의류메이커가 신제품을 만들려면 대상고객의 신체평균치수와 치수분포등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

평균치수를 알아야 대종상품의 기본사이즈 결정이 가능하고 치수분포를
파악해야 생산비율과 가지수를 정할 수 있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런 체위조사 자료가 없다.

공진청이 국민체위조사통계가 있긴 하나 5~7년 단위로 작성돼 체위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신체부위별 세부통계가 없어 의류업체들에겐 별도움이 되지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직접 체위조사에 나서기도 했으나 여의치않기는 마찬가지.세계물
산처럼 기성복을 구입하는 "사회초년병"들의 신체사이즈를 측정해 소비자
체형변화를 측정하는 메이커도 있으나 대상이 적은만큼 그대로 활용하는데
는 한계가 있다.

삼성물산 에스에스 같은 메이커는 자체조사를 실시했으나 조사방법의 미숙
등으로 인해 실제로 활용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대기업은 나은 편이다.

자체조사력이 빈약한 중소의류업체들은 아예 스카웃에 의존하고있는 실정
이다.

경쟁사에서 디자이너나 머천다이저(MD)를 데려와 가장 많이 팔리는 사이즈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경쟁사의 하청공장을 찾아가 새로 "협력"관계를 맺고
정보를 송두리째 빼오는 일도 있다는게 업계 관계자의 귀뜸이다.

이렇다보니 각 업체들은 "대충"만들어 시험판매해 보고 그중 잘 나가는 제
품의 치수만 재생산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국내 의류업체들이 자주 세일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류업체들은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된 국민체
위조사를 실시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패션협회는 당초 올해부터 자체적으로 국민체위조사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3년마다 전국 5대도시 10만명을 대상으로 국민체위를 조사해 업계표준자료
로 사용하려 한다는 구상과 함께.그러나 통산부가 지원예산을 심의하는 과
정에서 이 사업은 <>패션센터건립<>유행색정보보급등의 사업에 우선순위에
서 밀려버렸다.

소요예산은 3억여원이었다.

물론 국민체위조사가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지난 91~93년 국민체위조사를 실시한 일본의 경우 레이저측정장비를 탑재
한 특수버스까지 동원했다.

국민체위조사를 실시하자는 여론을 조성하는데 들인 기간만 2년이다.

한마디로 국내 의류업체들은 국민신체체형을 모르고 있다.

"우리 몸에 맞는 우리 옷"을 우리가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96년 유통시장전면개방을 앞두고 있지만 의류업계에서는 "신토불이"가 통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