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계동사옥에선 매주 월요일 사장단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지난5월29일 회의는 여느때와 그성격이 달랐다.

그룹의 "숙원사업"이라는 제철소건설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통상산업부의 요청에 따라 광양에 고로1기르 증설키로 했다"는 포철의
발표가 있은 직후에 열린 회의인지라 그도 그럴수밖에 없었다(회의에
참석했던 K사장).

통산부는 현대의 제철소건설계획이 수면위로 떠올랐던 1년여전만해도
"고로불허"를 분명히 했었다.

공급과잉이 우려되는데다 고로방식의 제철법은 이미 전성기를 넘어선
기술이라는게 당시 통산부가 내세운 이유였다.

그런 통산부인지라 "기습"을 당한 현대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공식답변은 회피하고 있으나 사장단회의의 결론은 이랬다.

"포철의 고로증설에 관계없이 제철소건설을 계속 추진한다. 다만 정부와
맞서는 인상을 주어서 좋을게 없는만큼 사업계획서 제출은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자"

사장단회의에서는 또 쇳물공장(고로)은 추후 방법을 찾고 압연공장이라도
먼저 짓자는 우회전략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장단회의가 있은지 며칠후 정몽구현대정공회장은 통산부를 방문했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과천"을 다녀갔는지도 모른다.

제철소건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현대와 여전히 "현대의 고로증설불허
방침"을 감추지 않고 있는 통산부.

양측은 수요전망에서부터 다르다.

철강산업을 보는 시각도 물론 딴판이다.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있다.

그것은 코렉스(COREX)나 박슬라브는 경제성이 떨어져 아직은 고로의 대안이
될수없다는 것이다(통산부는 작년말까지만해도 코렉스나 박슬라브를 권유
했으나 최근들어서는 이들 설비의 도입을 적극 말리고 있다).

그렇다면 "제2제철"은 과연 현대의 주장대로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통산부 논리대로 자원의 낭비인가.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조강수요는 2000년
5천1백80만t으로 늘어나고 다시 2004년에는 5천4백40만t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돼있다.

연평균 3.3%의 신장율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2000년에 1천7백60만t이 부족하고 2004년에는 2천20만t이 모자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그갭은 통산부는 포철 한보철강등이 2001년까지 증설키로 확정
했거나 검토중인 설비만으로도 충분하다는게 통산부의 논리다.

통산부는 또 현수준의 땅값과 인건비로는 고로제철소 건설에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현대의 제철소가 경쟁력을 가질 수없다고 단언
한다.

하지만 이같은 수요-공급전망을 그대로 받아들일 현대도 아니다.

통산부나 KIET의 수요예측은 "고무줄"이 돼왔다고까지 혹평한다.

포철이 설비를 확장할때는 국내수요가 늘어나고 민간기업이 한다면
줄어든다는게 정부당국이나 KIET의 수요전망이라는 것이다.

사실 KIET의 전망은 1년전만해도 4천8백48만t에 불과했다.

당시 철강공업발전민간협의회에서 KIET는 2000년 수요가 5천1백30만t에
달할 것이라는 현대강관의 주장과 달리 4천8백48만t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현대의 제철사업 추진논리는 또 있다.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를 시장으로 보아야 한다는게 그것이다.

어차피 경제국경이 사라지고 있는데 소재라고해서 국내시장만 고집해서
되겠느냐는 주장이다.

제2제철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민간의 효율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반박
한다.

통산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철소를 건설할 수있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사는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 가름할 수없다.

2000년이 되거나 현대로 하여금 제철소를 짓도록 해봐야 알 수있는 일이다.

"제2제철"은 역시 정책적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희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