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동네 구멍가게나 자영 슈퍼마켓 등 영세상점들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 등이 잇달아 들어선 도봉 노원지역과
영등포 양천 강서상권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유통산업의 재편바람을 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이들지역에서는 권리금의 하락과 함께 점포를 팔려는 매물이 쏟
아지고 있으나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창동의 동아아파트상가내 우성부동산의 조성재씨는 "인근에 E마트가
들어선 이후 단지내 상가를 찾는 고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평당 2백만원 하
던 권리금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며 "권리금을 포기하고서라도 가게를 팔
려고 해도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씨는 "상가내 50여 점포중 할인점과 경쟁이 어려운 식품점 슈퍼마켓 등
이 10여개 이상 매물로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이아파트상가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E마트가 들어선 이후 단골
고객이 줄어들면서 종전에 하루 50만원에 달했던 매상이 30만원으로줄었다"
며 업종전환을 생각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대형 슈퍼마켓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창동 주공아파트 19단지의 해태슈퍼마켓 종업원은 "할인점이 들어서기 전
만해도 하루매상이 1천3백만원을 오르내렸으나 이제는 1천만원 올리기도 힘
겹다"고 말했다.

반면 E마트 창동점은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 개점 1년반만인 현재 평일 1억
원 주말엔 2억5천만원 가량의 매상을 올리는 등 어지간한 중소백화점을 무색
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라이스클럽 그랜드마트 등이 들어선 강서구와 영등포지역의 상점들은 아
직까지 권리금의 하락현상은 뚜렷하지 않으나 머지않아 창동권과 같은 추세
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양스토어 목동점의 강찬규점장은 "내점고객수가 하루평균 1천7백명에서
1천3백명수준으로 줄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인근지역에 롯데 신세계 애경 경방필등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이 잇
달아 들어서며 적자생존의 경쟁이 시작됐다"며 "대형슈퍼는 출혈경쟁이라
도 해보겠지만 구멍가게는 버텨나가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아파트단지상가의 경기가 나빠지며 분양이 안되자 건설회사들이 점포구성
에 관한 용역을 전문회사에 맡기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신설아파트 단지상가의 구성용역을 맡은 KIRA컨설팅그룹의 이석남이
사는 "주말에 할인점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는 쇼핑행태가 확산되며 수퍼
마켓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며 "학원 유치원 패스트푸드점 등으로
업종유치를 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관계자들은 "할인점의 등장으로 주부들이 거리가 멀더라도 싼곳을 찾
아가는 원정구매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할인점들의 지방진출이 가속화되면
서 일산 분당 등 신도시는 물론 전국적으로 재래상권의 위축현상이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