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극도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두달여 조정을 받고 있던 주식시장이 국내경기에 대한 과열논쟁이 불붙은
것을 기화로 급격한 주가변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경기과열판단에 대한 재계등 민간부문의 반발로 시작된 경기논쟁은
아무래도 칼자루를 쥔 정부에 의해 경기진정대책, 즉 긴축정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주식시장약세를 설명하는데는 왔다갔다하는 정부정책의 난맥상및
불투명성, 금융시장의 고금리추세, 국제금융시장의 혼란 등 몇가지 이유가
꼽히고 있다.

그러나 증시침체원인의 대부분은 국내경기상황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그
처방을 위해서는 경기상황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경기활황은 국민의 소비활동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활동을 통해 자금수요
를 불러 일으켜 금리를 끌어올리고 이는 곧 금리자산과 대체관계에 있는
주식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2년여 지속되고 있는 국내경기호조세가 당연히 기업의 왕성한
투욕구를 자극, 고금리현상을 초래했고 이는 최근 자금시장의 불안정과
함께 주식시장의 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만의 특이사항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빈번한 민간경제활동
간섭이 정책의 갈팡질팡으로 드러나면서 실물및 금융의 경제전반에 걸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국내경기가 과열을 우려할 정도인지 짚어 볼 일이다.

지난 92년1월을 저점으로 수출과 투자에 힘입어 회복국면을 걷고 있는
국내경기는 지표상으로 볼 때 부문별로 과열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 4.4분기성장률은 9%선을 넘어 9.5%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제조업
가동률은 5개월연속 80%대을 웃돌더니 작년말 현재 85.5%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작년말현재 2.1%로 사상최저수준을 나타냈다.

설비투자의 경우도 12월에만 전년동기대비 21.6%나 증가했고 이로 인해
한달동안 기계류수입이 72.7%나 늘었다.

산업생산증가율도 13.5%에 달했다.

2년만에 이같이 쾌속질주를 한 탓에 자동차 조립금속 비금속광물등 최근의
경기회복을 주도해 온 일부 업종에서는 재고도 뚜렷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재고증가는 경기부진으로 팔리지 않아 생기는 것이 아니고
경기호조에 대응, 의도적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같은 지표상의 과열현상을 토대로 정부와 일부 민간경제연구소들은
현재의 국내경제가 경기정점에 도달했다거나 경기확장후기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경기가 아직 우려한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같은 시각차는 대체로 일부 지표의 과열에 대한 해석과 우리나라경제의
잠재성장률, 즉 적정성장률수준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지표에 대한 해석차이의 경우 정부는 적정수준의 제조업가동률을
80~83%로 잡고 있는데 반해 민간부문은 비교기준이 되는 92,93년의 지표가
경기부진으로 너무 낮았다는 주장이다.

즉 92,93년에는 설비투자가 91년의 12.1%에 비해 마이너스1.1%와 0.2%에
그친 부진으로 가동률지표자체가 낮았다는 것이다.

성장률에 대해서도 94년의 고성장은 93년에 5.6%에 그친 낮은 성장률과
비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민간부문의 분석이다.

8.3%로 추산되는 작년도 경제성장률이 적정수준인가 하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잠재성장률수준에 대해서도 정부는 7%로 잡고 현재의 경기상승이 초과
수요압력에 의한 과열성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간부문은 우리경제의 적정잠재성장률이 7.8%대라면서 따라서
현재의 경제성장률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경기과열의 적신호라고 할 수 있는 물가상승(인플레)압력이 아직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정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반론의
근간이 되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6%로 93년보다 다소 높아지긴 했지만
농축수산물과 공공요금상승분을 제외하면 실제 소비자물가는 4.8%상승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들어서도 1월과 2월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각각 4.9%와 4.6%(추정)로
예년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정부가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같은 경기상황에 대한 시각차는 경제일선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엘지경제연구원이 제조.유통.금융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감경기
조사는 응답자의 45%가 국내경기가 보통이다 또는 아직 회복초기국면에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가 좋거나 매우 좋다고 응답한 경우는 37.5%였던데 비해 경기가 아직
나쁘다 또는 매우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도 17.2%나 됐다.

엘지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는 정부가 책상머리에서 지표를 통해 읽고 있는
경기와 민간부문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경기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이같은 격차는 현재의 경기가 소비나 수출과 같은
내수부문이 아니라 수출부문이 주도해 온 탓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반도체 화학 자동차등 수출위주의 중화학공업은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데 반해 경공업이나 중소제조업체,도소매업이나 자영업체등 내수위주
업체들은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당국이 과도한 통화공급을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자금난을 호소하면서
부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최근의 자금시장왜곡현상도 이같은 시각차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통화당국이 국내경제상황을 감안, 올해 상반기중 통화공급량(M2기준)을
18% 늘려잡고 있으나 실제로 2월15일 현재 M2증가율은 평잔 16.9%, 말잔
16.6%에 머문 것도 정부의 판단에 착오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통화공급여력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에서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있다.

정부가 섣불리 경기과열을 진단하고 긴축정책을 예고함으로써 자금에 대한
가수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금리현상이 금리와 음의 관계에 있는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주체들, 특히 정부가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것은 정부의 경기에 대한 시각이 앞으로의 정책방향을 암시하고
그 파급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