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직장인들에게 "기피대상"으로 분류됐던 해외근무가 다시 인기를
되찾고 있다.

해외근무만 할 수 있다면 이런 저런 조건도 따지지 않는다.

"지역불문" "나이불문" "가족동반여부 불문"등 이른바 "3불문"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다.

기업들의 "세계경영"이 보편적 추세로 자리잡으면서 해외근무나 연수경험이
필수적인 "경력관리 코스"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젊은 사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50대 임원들에게 까지도 "해외로
미래로"의 새바람이 일고 있다는 얘기다.

주요 대기업그룹들이 경력 4-5년차 미만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해외지역 전문가파견 제도는 대입과 입사시험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젊은 사원들에게 "또 한차례의 경쟁장벽"이 됐다.

경쟁률이 3,4대 1을 넘어서는 건 기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해외 지역전문가 파견"(대리급 이하) "테크노 MBA
(경영학 석사)과정"(과장급)등 해외 연수대상자 정원을 1백70명으로 잡았다.

그러나 지원자는 5백명을 넘어섰다.

일부 "응시생"들은 "합격"을 위해 담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청탁"과
"로비"까지 불사했다고 한다.

이 회사 로인식전략기획실 이사는 "올해는 모집정원을 2백명가량으로 늘려
잡고 있지만 지원자가 벌써 6백명을 넘어섰다"며 "대학입시를 방불케 하는
높은 경쟁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선경그룹은 지난해 과장급 이상 간부 19명을 미국 대학원에 보내 전문교육
을 받게 하는 "선더버드 프로그램"에 예년보다 훨씬 많은 4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런 높은 해외근무.연수 선호추세는 불과 몇년전의 "해외 등돌리기"현상
과는 확실히 정반대의 양상이다.

그땐 대부분 직장인들이 해외근무나 연수명목으로 1-2년만 자리를 비우고
와도 승진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거나, 자녀교육에 어려움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제발 대상에서 빼달라"고 역로비를 했었다.

그런 해외근무가 다시 인기를 되찾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상황 변화"에서
까닭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말이다.

기업들이 해외거점을 잇달아 늘려나가며 다국적기업화의 트렌드를 밟음에
따라 해외근무는 소속 임직원들에게 "한번은 거쳐야 할" 필수코스로 인식
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기업쪽에서 해외근무 경험자들을 우대하는 각종 인사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승진심사때 해외근무 경험자에 가산점을 주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기본
원칙이다.

삼성물산의 경우 올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사보로 승진한 21명의 부장
가운데 18명이 "해외파"였다.

현대.선경그룹도 비서실 기획조정실등 핵심부서 임원에 해외지사장과
현지법인 사장들을 대거 기용했다.

자연히 임직원들사이에 "해외근무 선호 회귀현상"이 일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해외근무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가 "감지덕지"다.

자신의 나이나 대상지역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다.

물론 과장급이상 간부들은 자녀교육때문에 선진국을 선호한다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개도국지역 발령을 받으면 가족을 한국에 남겨놓고 단신부임하는 것도
마다않는다(효성그룹 임부섭이사).

오지로 통하는 중동 아프리카나 동유럽국가등에 대한 기피현상도 예전같지
않아졌다.

기업들의 세계화추세로 멀지않아 이들 지역에 대한 "전문가 수요"가 커질
것이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박원진상무는 "얼마전 시장개척 차원에서 미얀마 카자흐스탄
캄보디아등에 개설한 사무소 주재원을 뽑는데 지원자들이 몰려 큰 어려움
없이 적임자를 선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토익(TOEIC)응시자가 크게 늘고있는 것도 직장인들의 세계화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이 시험 응시자는 93년보다 80%나 늘어난 20여만명에 달했다.

이중 90%이상이 영어학습붐을 탄 직장인들로 추정되고 있다.

선경그룹 이로종기획담당 이사는 "요즘 직장인들사이에 어학과 국제감각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뚜렷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