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어떤 기자로부터 "선생님은 케인지언이십니까 아니면 통화주의자
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질문에 실소를 금할수 없었는데 내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구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유달리 모든 일에 파를 구분해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론의 내용이
아니라 어느 학파는 어떤 이론을 내놓았고 그 학파에 속하는 학자는 누구
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우리 사회의 맹목적 교육에 그 책임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거시경제학이라는 분야라면 케인지언과 통화주의자로 나누어 보는 것에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이 두 진영은 거시경제학 부문의 양대 학맥을
구축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두 진영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게
될때 경제를 팽창시키는 효과를 가질 것인지 여부를 둘러 싼 논쟁이었다.

일반적으로 케인지언들은 적자재정이 경제를 팽창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견해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재정적자가 국채발행에 의해 충당될때 이
국채를 사들인 국민들이 소비수준을 높이게 되는데서 팽창효과의 원인을
찾았다. 재정적자를 낸다는 것은 조세를 그만큼 적게 거두어 들이는 대신
국채를 판 대금으로 지출을 충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세금을 낼
돈으로 국채를 사게되고 그 결과 재산이 증가되었다고 느껴 소비를 증가
시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사람들의 소비수준은
소득의 크기뿐아니라 재산의 크기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통화주의자들은 적자재정이 아무런 팽창효과를 가져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채의 발행이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그 이유로 들었다. 국채가
발행되면 자본시장에서 소화되게 마련인데 이 시장의 자금이 국채를 사는데
쓰이게 되면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팔기가 힘들어진다.

회사채를 팔지 못해 자금을 조달할수 없게 된 기업들은 할수 없이 투자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 결국 정부의 적자재정이 민간부문의 투자를 구축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 셈이며 따라서 재정적자는 아무 팽창효과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얼마간의 구축효과를 가져오게 되는것은 분명한 사실
이다. 그러나 그 크기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 내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사실 구축효과의 크기는 재정적자가 나타난 시점에서의 경제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수 있다. 예컨대 경제가 거의 완전
고용상태에 가까울때의 구축효과는 크게 되는 반면 침체된 상황에서는 별로
크지 않게된다. 지금까지 나온 실증분석의 결과에서 구축효과의 크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가 힘든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