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새로운 산업협력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일방적인 기술도입과
종속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져온 한일기업간 산업협력체제가 최근들어 공동
기술개발과 공동이익 추구라는 대등한 위치의 공존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같은 한일 신산업협력시대의 개막은 일본업계가 엔고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만회하기 위한 파트너로 한국기업을 선택하고 있는데도 이유가
있지만 국내업계가 각분야에서 일본기업과 보완체제를 유지할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나 실력을 갖춘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NEC및 미쓰비시,금성일렉트론-히타치,현대전자-후지쓰등 반도체
산업에서 일기 시작한 전략적 제휴의 새로운 바람은 자동차 가전 조선등
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산업협력의 방법도 공동기술개발 상호부품
조달 시장 공동진출등으로 다양화 해가고 있다.

양국간 산업협력은 대기업들 뿐아니라 중소기업차원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구마가이 히로시 일본 통산상은 최근 한국의 중견
중소기업과의 부품공동생산등을 위해 "일한산업기술재단"의 공동사업으로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사실 국내 반도체메모리산업과 조선산업은 국제시장의 시황을 좌우할수
있는 메이저의 위치에 올라서 있어 일본업체들이 장기적인 시장확대를
위해 공동전선을 펼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다.

또한 엔고에 따른 일본업체의 어려움이 양국간 국제분업을 촉진하고 있는
가운데 기술개발의 위험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한 공동기술개발의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러한 협력체제구축으로 일본업체는 미국 유럽업체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해가며 시장을 확보할수 있는데다 국내기업들은 과거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첨단기술을 쉽게 들여올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일간 새로운 협력체제가 가장 활성화되고 있는 분야가 반도체부문.
삼성전자는 지난 1일 NEC와 차세대 메모리인 2백56메가D램을 공동개발
키로 합의했다. 삼성전자와 NEC는 2백56메가D램 기술개발에 따른 과도한
기술개발비 지출등의 위험부담을 서로 분담하고 기술의 상호공유를 위해
공동기술개발이라는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된 것.

세계 메모리시장의 2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두 기업이 공동개발을
함으로써 조기 상품화와 함께 차세대메모리시장 개척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이미 미국 유럽의 반도체메이커들이
2백56메가D램 개발을 위해 전략적제휴를 맺고 있는 것도 자극이 됐다.
삼성으로서는 세계최고수준의 반도체설계기술을 갖고 있는 NEC와의 제휴로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게된 동시에 설계기술의 습득이 쉬워졌으며
NEC는 세계최대메모리 생산업체인 삼성의 제조설비를 이용할수 있게됐다.

삼성전자는 또 특수형 D램(Cached DRAM)분야에서 미쓰비시와 제휴했다.
협력내용은 개발은 독자적으로 하되 제품의 규격을 일치시키자는 것이다.
다양한 규격의 이 반도체가 세계각국에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한일기업이 규격을 통일해 세계시장의 공통규격으로 표준화하겠다는
의도로 결국 세계시장을 두업체가 이끌어가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금성일렉트론도 지난해말 히타치와 반도체 전분야걸쳐 전략적제휴를
맺었다. 금성일렉트론과 히타치는 이를 통해 반도체개발과 판매등
전사업분야에서 상호협력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지난해 10월 후지쓰와 4메가D램과 16메가D램을 공동생산키로
합의했다. 이에따라 대상제품은 양사의 제조시설에서 함께 생산되며 두회사
고객들에 대한 물량공급에 큰도움을 받게 됐다. 현대와 후지쓰는 서로의
기술및 생산능력을 공유하는 한편 차세대 메모리의 공동개발에 협력할 계획
이다. 특히 후지쓰는 국내기업의 취약부분인 주문형반도체(ASIC)분야에서
세계1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데다 대형컴퓨터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이고
있어 협력의 폭을 확대할 경우 현대의 기술축적에 큰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
된다.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은 제조장비로도 확산돼 삼성전자는 도와사및
DNS사와 함께 국내에 반도체 제조장비회사를 합작설립했다. 일본은 국내
반도체메이커들의 설비투자확대로 제조장비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엔고로
경쟁력이 미국제품에 비해 떨어지자 한국내에서의 생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과거와는 달리 삼성등 국내업체가 다수지분을 확보,
기술이전을 통한 협력관계의 구축이 가능해졌다.

가전과 멀티미디어분야의 협력도 추진되고 있다. 대우전자가 지난달 소니와
방송장비분야에서 기술협력체제를 구축했으며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는 닌텐도
사 세가사와 각각 멀티미디어용 소프트웨어 제작분야에서 기술협력계약을
맺었다.

자동차산업에도 한일 신산업협력체제가 빠른 속도로 구축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최근 마쓰다와 대형승용차를 공동개발키로 합의했다. 기아는
마쓰다,미국 포드와 기술및 자본제휴를 통해 그동안 소형승용차인 페스티바
(수출명 프라이드)및 아스파이어(아벨라)를 마쓰다의 설계로 생산해 미국
포드가 판매하는 3국간 협력체제를 유지해왔으나 공동개발키로 함의함에
따라 상품기획단계부터 참여할수 있게됐다. 이들 두회사는 앞으로 공동설계
는 물론 상호부품을 교환, 양국에서 같은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게 된다.
마쓰다는 기아의 기술력이 믿을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판단,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대형승용차 개발의 위험부담을 나누어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기아로서도 곧 중형승용차의 독자모델을 갖게되는 시점에서 대형
승용차의 모델을 더이상 외국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데다 대형승용차
의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개발 능력을 제고해야겠다는 구상이다. 양국업체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일본 최대의 종합상사인 이토추상사는 기아의 호주지역 판매를 대행하는
방안을 최근 모색중이다. 마쓰다의 해외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이토추는
마쓰다의 자동차가 엔고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현대자동차가 일본차를
누르고 최고의 판매를 유지,한국차의 이미지가 좋은 호주 수입차시장에
판매를 대행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이토추도 기아의 자본제휴선으로
같은 자본제휴선인 포드를 통해 아스파이어를 호주시장에 팔고 있는
기아는 포드와 이토추의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쓰비시중공업과 홍콩 DOEL사가 발주한 4천9백50TEU급
대형컨테이너선 6척을 공동수주했다. 설계는 미쓰비시가 맡고 제작은
삼성이 맡는 분업형태의 제휴이다. 미쓰비시는 엔고 고임금에 따른 높은
생산비로 수주가 어렵다는 점을 해결했고 삼성은 미쓰비시와의 공동수주를
통해 일감을 확보할수 있게 됐다.

이러한 양국간 협력은 기술이전을 통한 과거의 협력체제와는 다른
양상으로 양국의 산업협력체제가 한차원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엔고로 일본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기술력이
높아짐에 따라 양국기업간의 협력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반도체
가전 멀티미디어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결실이 늘어갈
것이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정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