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경협의 물꼬가 트일것인가.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수용키로 방침을 정하자 재계는
그동안 얼어붙었던 대북경협이 재개될 것인지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종합상사를 비롯한 재계는 북한의 핵사찰 수용과 구체적인 핵사찰 일정을
담은 미국과 북한, IAEA와 북한의 합의가 이달 중에는 공식 발표될 것으로
내다보고 우리 정부측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북경협재개와 관련,재계의 가장 큰관심사는 기업인의 방북허용 문제.

임가공수준에 머물고 있는 대북 경제교류를 투자사업단계로까지 끌어
올리기위해서는 투자위험을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기업의 최고경영층이
북한측과 직접 경협방안을 협의할 수 있는 대화창구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판단이다.

재계는 IAEA의 핵사찰이 빠르면 이달중 실시되더라도 기업인방북이 조기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인의 방북허용과 관련,통일원등 정부측이 정해놓고있는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원은 이미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통상적인 수준의 핵사찰외에 남북한
동시 핵사찰과 남북대화 재개를 북한측이 수용해야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
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신고시설에 대한 특별
핵사찰을 수용할 경우 남북경협재개의 돌파구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거나 통일원에 방북을 신청해놓고있는
기업은 현대 삼성 대우 럭키금성 선경 롯데 동양 효성 두산 코오롱 한일
진로미원 고합 대농 태평양화학등 40여개.

방북이 허용되면 정세영 현대그룹회장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강진구
삼성전자회장 신세길 삼성물산사장 럭키금성그룹 천진환사장등이 방북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특별핵사찰문제는 현재 합의가 이뤄진 IAEA의 핵사찰이 시행된후
있을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에서 다뤄질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기업인
방북은 빠른 시일내에 성사되기는 어려울것이라는게 재계의 인식이다.

이에따라 재계는 당분간 임가공사업을 주축으로 대북경제교류를 활성화
한다는 방침을 마련해놓고 있다.

대북임가공사업은 실제로 핵사찰문제에도 불구,활기를 띠고있다.

지난91년 1건에 2만3천달러에 불과했던 대북임가공 실적은 92년 9건52만
9천달러,지난해에는 42건 4백33만8천달러로 큰폭의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임가공을 포함한 전체 대북교역 규모가 지난해 반입 1억9천42만달러,반출
1천22만달러등 모두 2억64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천2백87만달러 줄었던점을
감안하면 임가공사업만큼은 핵사찰문제에 따른 영향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지난해 기업별 대북임가공실적은 삼성물산이 반입실적을 기준으로 27건에
모두 2백50만달러에 달해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주)대우와 고합상사가
각각3건,럭키금성상사가 2건의 임가공사업을 성사시켰다. 이밖에 한일합섬
국제상사 쌍방울 양지실업 (주)헌트등 모두 9개사가 대북임가공사업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상사들의 경우 홍콩 북경 동경등 제3국 무역중개상을 통해 조선대동강
무역회사와 모란봉합영회사등 북한기업을 파트너로하여 주로 의류를 중심
으로 임가공사업을 늘려가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해 임가공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양복상의 사파리
오리털점퍼 셔츠 스웨터 스커트 반바지등을 들여와 대부분 카운트다운
버킹검 브룩스힐등의 브랜드로 국내에서 판매하고 일부는 일본과 독일등에
수출했다.

삼성물산은 올해 대북 임가공사업을 강화,반입물량을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3백만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주)대우는 관계사인 신성통상등과 공동으로 대북임가공사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자용 사파리와 점퍼 셔츠등을 1백만달러정도 반입해
유니온베이등의 브랜드로 국내에서 판매했다.

럭키금성상사는 지난해 2차례에 걸쳐 모두60만달러상당의 하절기작업복
6만벌과 하절기작업복 3만7천벌,면바지 1만1천벌을 들여왔다.

이밖에 고합상사는 20만달러상당의 남자바지와 자켓 점퍼,쌍방울은 런닝
셔츠등 언더웨어를 각각 반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의류로는 국제상사가 신발위판을,양지실업이 봉제완구를 들여왔다.

기업인방북이 허용돼 대북경협이 재개될경우 각종 대북투자 프로젝트도
활발히 추진될 전망이다.

대우그룹은 중단상태에 있는 남포공단사업을 곧바로 재개할 계획이며
삼성그룹은 북한이 우선적으로 추진하고있는 나진 선봉지구 개발사업을
비롯 전자제품 스웨터 식료품공장 건설사업등에 착수할 방침이다.

럭키금성그룹은 2억달러규모의 정유공장개보수사업을,선경은 수산물가공및
봉제의류,쌍룡은 신발과 수산물가공,효성은 직물과 벽지합작사업에 속속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방북문제가 풀리더라도 이같은 프로젝트들이 성사되기까지에는
최근 변화조짐을 보이고있는 북한의 대외 경제정책이 큰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공이 최근 작성한 "북한의 대외경제정책 변화전망"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대외경협과 관련,남한보다는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달현등 대남사업담당자들이 당서열에서 대거 밀리고 직위에서 해임됐음
에도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것은 남한과의 교역이 북한의 대외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무공은 제3차 7개년경제계획이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한 북한이 앞으로 2-
3년간의 조정기간동안 농업과 경공업 무역을 발전시킨다는 목표아래 기대에
못미친 남한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대외개방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계에서도 대북경협이 시기를 놓친 나머지 일본과 대만등 경쟁국들에게
실익을 빼앗길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시장을
포기하지않는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경협에 임해야만 선점효과를
거둘수있다는것이 재계의 판단이다.

북한의 핵사찰문제가 일단락된이상 정부가 기업인 방북을 포함,대북경협에
어느정도나 유연한 자세를 보이느냐가 대북경협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것으로 재계는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