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북전쟁당시에 북군의 최고사령관 유리시즈 그랜트장군은
전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 1868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집권당인 공화당은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고 그랜트
장군을 후보로 추대, 쉽게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

그랜트 신임대통령은 취임당시 가장 높은 인기도를 누린 대통령이었다.
전장에서 그가 보여준 투지와 지휘능력을 익히 알고있는 미국의 일반
시민들은 그랜트장군의 대통령취임을 워싱턴장군의 대통령취임에
버금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랜트대통령이 이끈 새정부는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실망과
좌절을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새정부는 대통령의 측근인사들을
정부의 많은 요직에 임명함으로써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시작
했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대통령의 인척들은 대소 이권에 관여, 뇌물이
관련된 스캔들에 말려들었다.

행정부의 부패와 무기력, 경제의 파탄, 남북화해의 실패등 실정이
점점 쌓여갔다. 극단적인 인종 차별 집단인 KKK(Ku Klux Klan)가 그의
임기중에 조직된 사실도 노예해방 전쟁을 이끈 장군의 이미지와는
맞지않는 일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된 그랜트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진하자 학계와 정부는 직업공무원제도확립에 박차를 가했다.
썩은 냄새가 물씬거리는 무능대통령의 유산이 실력위주의 공무원조직
육성을 위한 밑거름구실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직업공무원의 인사권에대한 정치권의 간여가 큰
시빗거리가 되었었다. 이 시비는 현 내각의 구마가야(웅곡)통산성
장관이 성내의 나이토(내등)산업정책국장에게 사직을 요구한데서
비롯되었다. 이 사건은 나이토국장의 사직이유(부하의 부당한 승진
인사)여하를 불문하고 정치인인 장관이 직업공무원의 인사권에 관여
했다해서 삽시간에 정치문제로 클로즈업 되었다. 이 인사파동은
사이토국장의 사표제출로 일단 끝났지만 관료조직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확실히 과시한 사건이었다.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 가신그룹이 직업공무원의 꽃인 차관급
인사에까지 깊이 파고들었다해서 말들이 무성하다. 전문성이 과거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 관료조직의 큰자리를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가 차지하는 것이 과연 시대에 걸맞는 인사행정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