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은 기업인 수난의 해로 기록할 수도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의
사나이" 박태준의 몰락이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와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채 일본
으로 잠적한 박태준 전 포철회장은 신정부 출범후인 지난3월12일 포철
명예회장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의 사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세무조사 세금체납 자택압류라는 불명예가 뒤따랐으며
파장은 포철내 측근인사들의 무더기 강제퇴진으로까지 확산됐다. 그는
지금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은둔해있다.

말년의 정치외도가 25년여동안 쌓아올린 "철의 사나이"의 명예에 먹칠을
한 셈이다. 철강의 불모지 한국에서 세계2위의 철강업체 포철을 키워낸
철강입국의 일등공신 박태준.

포철왕국의 독재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일부 있었지만 그는 분명 한국
철강의 대부였다.

중국의 실권자 등소평이 탐을 냈을 만큼 이름이 알려진 세계적 기업인
이었기에 그의 불명예 퇴진은 포철의 장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재계내부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기업인들의 몸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졌고 그런 분위기는 다시 재계의
침묵으로 확산됐다. "정명식회장 조말수사장"체제가 그런대로 안착,포철은
흔들림이 없었으나 그의 퇴진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도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기업인의 정치참여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있는가하면 정치
보복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박태준을 기업인으로 볼것인지 아니면 정치인으로 자리매김을 할것인지,또
그의 몰락을 필연적 결과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보복으로 기록할
것인지는 후세의 사가들이 할 일이다. 다만 현시점에서 분명한 점은 기업인
의 정치외도가 개인의 불행과 함께 여러가지 국가적 손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