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이라고 하면 그 어감 자체로 아직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
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나이든 층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실로 각양각색의
반응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나도 어떤 때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그들을 "운동권"이라 지칭하고,어떤
때에는 과격하고 철없는 이들의 집단으로 이 말을 사용해 온 것 같다.

용감하고 때로는 무모하기조차 한 그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자유로워진
오늘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끔찍한 그들의 행동이
섬뜩해 눈을 감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아니 나에게 요즘 들어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가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어른이 된 그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대학을 다니면서 심정적으로 운동권의 행위나 주의에
동조한 광범위하고도 미온적인 사람들 말고,아마도 생각컨대 고민을 거쳐
절대적으로 자기의 행동양식을 결정한 소수의 사람들 말이다.

심정적인 동조자들은 당시에도 심정으로만 동조했을뿐 자기의 현실을
중요시했듯이 기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기가 처한 현실에 금방 적응하는,
눈에 띄지 않는 보통사람들일 테니까.

그런 사람들의 행동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다른 사람들을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몇명 만나 보았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고 아이를 통해 그를 느끼고 신선한 감동으로 한순간 고개를 갸우뚱
하며 생각에 젖었던 것이다.

여러 말 생략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들은 다 알 것이다. 학교에
찾아가든 안가든,그래서 담임선생님을 만나든 안 만나든 그 한해 동안
어머니들은 담임선생님의 인격을 거의 다 느낀다. 때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어머니들의 직감은 적중한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교사들은 그들의 의식이 사회의 다른층 사람들보다도 더 혼란을 겪고있는
듯이 보인다.

물질적인 가치와 마땅히 교육자가 취해야 할 도리라는 것 사이의 깊디깊은
모순이 그들을 의연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두 아이를 통해 12년에 걸쳐 만난 교사들 마다에서 나는 각기 복잡한
심정을 느끼곤 했다. 해서 나는 내나름의 철학으로 이제는 학교에 찾아가지
않는다. 학교에 찾아가지 않는 학부모의 행위가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과도기처럼 지금은 어쩔수 없다고,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고있다.

그런중에도 색다른 두사람을 나는 만났다. 물론 아이를 통해서 느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한사람은 총각선생님이었는데 학기초에 미군철수가 어떻거니,절대빈곤이
어떠니 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고 해서 어머니들은 자연 긴장했었다.
아이들이 그런것에 대해 자유스럽게 토론할수 있는 토대를 갖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서투른 대로 솔선수범하는 모양이었으며 열정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반장이 된 아이의 어머니가 선물한 혁대를 기필코 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해서 생긴 돈 5만원을 학급비로 썼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지독한 매연속에서 신선한 솔바람 한점을
만난 기분이었고 그것이 너무 신기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운동권"이라는
단어을 다시 생각했던 것이다.

또 한사람은 처녀선생님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은 절대 봉투를 받지 않아, 절대로"
아이의 "절대"라는 발음속에는 우리가 그동안 바라고 바랐던 어떤 기원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애는 담임선생님을 제법 존경하는 눈치였다.
자기가 대학에 갈때는 그 선생님이 나온 동양사학과에 가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나는 생각했다. 혁대나 봉투를 돌려주는 행위는 어찌보면 부자연스런
것일수도 있다. 단순한 성의를 무시하는,요령없는 행위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미혼의 그들에게 기대해본다.

그들의 그런 거스름이,뒤틀림이 지금까지 우리의 선입견에 작용해온
화염병이나 분신자살,억지요구 따위의 부정적인 개념들을 "운동권"이라는
단어에서 말끔히 가셔내 주고 있다고. 그리고 매연에 찌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솔바람 구실을 한다고. 그러니 제발 길게 그런 소신대로 살아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