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대한 각종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그리 오래된 관행이 아니다.
1930년대의 경제대공황때 존 M 케인즈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고서부터이다. 그 이후 60여년동안 거시경제는 많은 나라에서
경제정책의 주유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각국의 정책입안자들중에는
케인즈파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도전받고 있다. 거시경제의
약효가 갑자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약화만 부르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케인즈도 원래부터 재정정책주창자는 아니었다. 1920년대까지 그는
통화정책옹호자였다. 그의 동료가 왜 변신을 했느냐고 힐난하자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나의 마음을 바꿨다. 이럴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반문했다. 아마 케인즈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또 마음을
바꿨을지 모른다. 요즘 세계경제상황은 또다시 거대한 변혁의 물결속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의 퇴조는 실제로 미국학계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12개월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경제학자 25명중 첫째는 무명의 시카고대학
교수 리처드 A 포스너(Richard A Posner)였다. 그는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법률가인데 실제적 문제로서 법적 규제문제와 경제전망을 연결시켜 명성을
얻고 있다.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여섯번째로 처져있고 케인즈는
17번째로 밀려나 있다.

상황을 이렇게 급변시킨것은 경제에 국경이 사라지고있는
글로벌화현상이다. 이제 한나라 정부의 경제적 개입은 그것이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크게 좌우하는데 한계에
직면한것이다. 전지전능한 한나라 정부의 중앙계획은 빛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공급경제학으로 경제회복을 꾀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미국대통령도
한때 "경제자문위원회가 진실로 필요한가"하고 의문시했었다.

국제화시대에서 한나라 경제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것은 수출입이다.
그리고 무역을 좌우하는것은 내국적인 재정이나 통화개입보다도 유동환율
금리수준 기술혁신 국제적 가격메커니즘 행정규제유무 투자환경과
시장환경등이다. 70년대 오일쇼크때 이미 세계경제가 한데 얽혀
파장한다는것을 체험했고 이제는 다방면에서 이같은 현상이 일반화되고있는
것이다. 국제화된 각국경제는 수많은 복합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의 경제정책으로 이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는것이다.

선거운동때 클린턴미대통령의 경제참모였으며 지금은 노동부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원래 정부정책은 오로지 경쟁력강화를 위해
자원을 동원할수 있는 산업정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그런데 이제 입장을 바꾸었다. 정부개입의 위험성을 경고한
자유주의경제학자 하이예크의 영향때문이라는 추측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기업들의 글로벌화현상에 정책기반을 두고있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기업들에 미국을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정부는 잘 훈련된 노동력을 확보할수 있게
교육에 치중해야 하며 국제시장의 기능을 다할수있게 도로 항만등
사회기반시설만 잘 갖추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경제처방에 정부의
경제개입같은 케인즈적 거시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전후 산업발전을 주도했다는 일본의 통산성도 크게 변모하고 있다. 이제
국제화된 산업계를 정부가 지도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정부가
유효수요를 조정하는 케인즈류의 정책은 재정적자만 만성화시킬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다. 필요성이 사라진 행정규제를 제거하고 창조적 혁신은
기업가정신에 맡기자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을 주축으로한
슘페터경제학파가 일본통산성에서도 득세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일본
독서계에선 슘페터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천명한 신경제정책도 국제화시대의 새조유와
흐름을 같이한다.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교육에 GNP의
5%를 투자하겠다고 공약했으며 사회간접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했다.
행정규제완화도 들어있다. 금융실명제를 보완조치를 통해 조기정착시키는
것도 선진화의 길이다. 이런 것들은 새로운 시대에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들이며 거기에 정부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국제화시대의
정부기능이 오히려 손상된다. 그리고 백화점식개입은 정부의 기본적
기능마저 제약한다. 국제화시대의 주역인 기업들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사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정부를 느끼기보다 우리기업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뛸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기능인 것이다. 각국 경제정책의 새로운 조류가 시사하는 것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