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을 회전시켜 "기능"이라든가 "권한"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회계층은
부탁하는 그룹과 부탁을 받는 그룹으로 재단될수있다.
구혼을하고 받는 남녀관계를 포함한 개인대개인의 모든관계, 기업간의
하청관계, 기업과 관청간의관계등 사회의 모든 움직임이 여기에 망라된다.
양자간의 청탁관계는 종국적으로 협력의 속성을 갖는다. 여기엔 "인사"
란 매체물이 따르며 이것은 상식의 룰이다. 이 상식의 룰이 깨지면 마찰이
생긴다. 인사란 선물과 사례금이며 이권이 걸린 관청의 각종 인허가
경우라면 선물의 부피는 커진다. 이러한 청탁관계는 부패구조형성의
출발점이다. 부패구조의 원리란 이처럼 단순하다.
최근 변호사출신의 청와대비서관이 관련된 10억원수령사건은 결국 이러한
원리가 "현실"로 입증된것일 뿐이다.
상식밖의 거액수임료를 받지 않을수 없었던 복잡한 사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과 개혁의 심장부에서 잠재된 반개혁의식이 사건화로 돌출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개혁이 개혁을 부를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요컨대 검은돈에 대한 미련이 있는한 우리사회에서 부패의 "검은해방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부패구조의 원점은 현실의 정치판에서 시작된다. 정치가는 선거인들로
부터 표를 얻는대신 선심을 쓴다. 선심의비용은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업공약이라해도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진다. 결국 선거의
부조리가 제악의 근원인셈이다.
그것이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보아왔듯이 선거비용이 2,000억원 이상이나
소요되는 선거가 된다면 그 부작용은 클수 밖에 없다. 개혁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란 폭력을 사용치않고 합법적인 힘의 행사에의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사회적 가치란 근대사회의 기초인 합리주의의
구현이며 개혁은 이를 고도화 세련화하는 작업에 다름아니다.
합리주의란 순리와 상식의 세계이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는 합리주의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귀절이
나온다.
"아침5시 혹은 밤8시에 당신의 망치소리가 채권자의 귀에 들린다면 그는
1개월을 더 연장해줄것이다. 그러나 일해야할 시각에 술집에서, 혹은
도박장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다음날 준비되지 않은 당신에게
반제를 청구해올것이다"
합리주의가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신용의 창출이다. 신용은 돈이며 돈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벌게해준다. 기업인이 자금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는 없게된다. 합리주의는 목표의 당위성은 물론 과정과 방법에서의
순리까지도 포함한다.
혁명이 슬로건과 선동의 정치집회라면 개혁은 각론에 대한 심의회와 같다.
전자가 과거의 청산이라면 후자는 과거의 수렴이다. 슬로건이란 늘 환상을
부른다. 환상은 결국 환멸로 귀결된다. 그러한 역사적 실례는 많다.
지난 88년6월의 일이다. 중국관영CCTV에선 "하상"이란 쇼킹한 6부작
시리즈가 방영됐다. "하상"이란 황하의 엘레지란 뜻이다.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북경의 관변시각이 아닌 강변민초의 시각으로 조명한 것이다.
작가 소효강은 이런 대사를 삽입한다.
"개혁이란 감자를 찌면 빵이 된다든가, 농촌총각에게 신부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대다수의 중국인은 확실히 알고 있다"이것은 중앙당의 개혁
정책에 대한 중대한 조반이다.
1년후 천안문사태가 터지고 작가는 해외로 망명한다.
개혁이 어떤 도그마에 빠진다든가, 인기주의에 영합할때 실패의 확률은
높다. 인기주의란 소수로 보이는 "조용한 다수"와 다수로 보이는 "시끄
러운소수"의 착각에서 비롯된다.
개혁이 정치의 품질관리인것처럼 개혁자체에도 품질관리가 필요하다.
개혁의 핵심 포인트가 정치개혁, 특히 부패된 선거행태의 대수술에 있음은
앞서 지적했지만 이왕 시작한 개혁도 방법상 더욱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다.
개혁의 본질적목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있다. 개혁이 무슨
중대발표시리즈나 깜짝쇼의 무대가 된다면 그것은 최대다수의 최대불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