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국의 근대화"란 구호가 짜증날 정도로 되풀이 강조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역사적 시대구분으로 보면 이미 우리나라는
근세를 지나 현대에 들어섰는데 무슨 근대화냐고 감정적으로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근대화의 뜻은 시각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해석할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마디로 서구화,또는 구미화라고 할수 있다.

130여년전에 일본이 외세의 압력으로 개국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을때,후쿠자와(복택유길)가 "탈아입구론"을 주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의 근대화를 역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탈아"를 말한것은
당시 아시아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정체성을 지적한 것이었고 "입구"란
서구적인 산업사회를 조속히 실현시켜야겠다는 목표를 설명한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입구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아시아와 서구는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이고 문화적 전통이 전혀 다르기때문에 문화적
충격이나 갈등을 겪게 될것이 확실했었고 잘못하면 "문명개화"로 일본인의
얼굴을한 서양사람이 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았다. 그래서 "화혼양재론"이
대두하게 된다. 화란 일본인이 스스로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지만,요는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되 일본사람의 정신은 잃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일본인은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한국등 당시의 선진제국으로부터 문물을
수입하여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체험적인 경험이 많았었다. 바꿔 말하면
외래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식으로 소화하는 "노하우"가 형성되어 있었다.
예전에 그들이 쓴 말에 "화혼한재"라는 것이 있다.

그 기반위에서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이나 청나라
보다는 수용하기가 용이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와 서구는
문화적으로 너무나 이질적이었으므로 일본 역시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진통끝에 겨우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두스 교수는 현재의 일본을 "근대적인 면과 동시에
일본적인 특성을 잃지않고 있다"고 평하면서 그것은 일본의 과거가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일본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외래문화를 수용하는데 있어 좀 서투른 편이
아니었나 싶다. 불교가 전래되면 5교.양종으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가도 선.교양종으로 정비되고,유교가 들어오면 실학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성리학의 독무대가 되고 만다. 사회주의사상이 유입되면
북한에 국한되지만 가장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정권을 수립하게 되고 만다.
아마 우리민족의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 성향에 그 원인이 있지않나 싶다.

최근 일본에서는 "탈구입아론"이 한창이라 한다. 언제는 멋대로
"탈아"했다가 지금와서 무슨 새삼스럽게 "입아"냐고 감정적으로 핀잔을
주고 싶은 것이 필자의 심경이다. 그러나 어째서 일본이 이제 와서 탈구를
하고 입아를 하겠다고 나섰는지 그 객관적 동기를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또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첫째로 일본은 근대화를 달성했으므로 이제부터는
구미제국과 독자적으로 경쟁해 나가겠다는 발상이 있을수 있다. 둘째로는
EC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등의 결성으로 일본상품이 종전처럼
구미시장에서 수출을 증대시켜 나갈 전망이 흐려졌으므로 주된 수출선을
전환시켜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반면에 셋째로 아시아는 근래에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앞으로 아주 유망한
수출시장으로 부상될 것이 확실하므로 이에 착안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로서는 일본의 "탈구입아론"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것
같다. 일본이 집중적으로 아시아로 경제적 진출을 시도할때 우리의 입지는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항을 해야 할까. 지금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도 우리 주변정세를 신중히 살펴보며 냉철하게 우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때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