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이 취임이후 확실하게 해놓은 일은 사회전반적인
분위기를 다잡아놓은 것이다. 김대통령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실현해보였다. 그것도 취임 100여일만에 해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임지에 부임한 일선지휘관이 초장에 군기를 잡지못하면 끝내 부하를
다스릴수 없듯이 국가경영도 마찬가지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물통령"으로
끝날수밖에 없었던 것도 어찌보면 취임초기를 실패했던 탓이다.

문제는 경제다
김대통령은 이런점에서 분명히 달랐다. 사정,개혁이라는 낱말들과 함께
"대통령이 참 잘한다""정말 좋은 대통령을 뽑았다"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김영삼정부의 개혁은 호랑이등에 올라탄 형국이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다. 개혁을 위해서라도 기력을 되찾아줘야한다며
신경제100일계획이 추진됐고,5개년계획의 보따리도 풀었지만 실물경제는
정책이 의도하는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물가는 껑충 뛰고 그나마
된다싶던 수출마저 뒤뚱거리고있다. 한때 활기를 되찾는 듯하던
주식시장도 무기력해진 느낌이다.

경제계에서는 박수소리가 요란한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게다. 정부가 설비투자를 강조하자 재계가 투자일정을 앞당기고
투자규모도 더 늘리겠다며 화답하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경제와 사정 별개
그러나 겉모습과 속내가 같을수는 없다. 우리네 기업풍토에선 특히
그렇다. 청와대경제수석의 강연장과 대통령의 만찬석상에 참석했던 한
원로기업인은 농반진반으로 그의 속내를 이렇게 나타냈다. "참석하지
않았다가 눈밖에 나면 어떡합니까"라고. "문민정부가 행여 그럴리가
있겠느냐"고 했더니 "우리나라엔 형법에도 없는 괘씸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며 일단 미운털이 박히면 골치아프다는 표정이었다. 기업들이 이렇게
눈치를 보고 부처마다 대기업을 두들겨 패는 듯한 정책을 내놓고 있으니
경제가 잘 나갈리가 없다.

경제와 사정,또는 경제와 개혁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경제는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데 반해 개혁은 단기간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충격요법이다. 그런데도 경제와 개혁을 함께 붙여 "경제개혁"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신경제5개년 계획에서도 "개선"이라는 글자를 붙여 족할 내용까지
천편일률적으로 "개혁"이라는 단어를 접속시켜 놓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잘못된 관행이나 의식을 바로 잡자는게 그 이유일텐데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제와 개혁을 접목시키다보니 경제가 좋아할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신경제팀은 하루빨리 경기를 부양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인것
같다. "개혁"을 통해 잘못된것을 바로잡으면서 "경제"도 당장
살려놓겠다는 것이어서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건 너무 낙관적인 이상론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져있는 상황이어서 과거식의 경기부양대책이 효과를 낼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정의 바람이 재계를 맴돌다보니
기업인들이 계속 추위를 타고있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가기강이 섰다고해서 경제하는 분위기가 당장 무르익는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말할수 있겠다.

기업이 경쟁좌우
한때 클린턴대통령이 의장을 지냈던 미국민주당정책연구그룹
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의 신하기관인 진보정책연구소(PPI)는
최근 "변화를 위한 과제(Mandate for Change)"란 보고서에서 "이제는
기업이 그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며 이른바
"기업경제학(Enterprise Economics)"을 주창하고 있다. 기업을 뛰게해야
나라가 산다는 뜻으로 우리의 신경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것같다.

기업을 뛰게 한다고 이들에게 투자를 하라든가,신경제에 적극 동참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 경제할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된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돈이 벌린다 싶으면 기업은 알아서 뛴다. 그것이 기업의 생리다.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는게 낫다.
프랑스 루이14세때 콜베르재무상이 기업에 "도와줄게없느냐"고 묻자
기업인들은 "우리를 제발 그냥 내버려둬 달라"고 했다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