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계획의 개혁과제중 가장 민감한 이슈로는 금융실명제를 꼽을수
있다. 그간 여러차례 실시여부를 놓고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이젠
정치적으로 비중있는 현안이 되어 버렸다.

정부로선 야당의 정치적 공격목표가 되어버린 실명제가 말그대로 "뜨거운
감자"가 아닐수 없다.

김영삼대통령주재로 첫 경제장관회의가 열린 지난3월3일 경제기획원관리는
"실명제 실시 일정을 5월께 발표하겠다"고 밝혔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얼마뒤 일정제시에 부담을 느낀 박재윤경제수석과 이경식부총리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해 버린것이다.

이런 해프닝이 있고서부터 경제부처 관리들은 일제히 "실명제 기피증"에
걸린듯 입을 꿰매 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일정을 제시하지 않는다는게
새정부가 실명제를 무기연기하려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정부는
연기가 아님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명제에 관한
온갖 루머가 난무해 금융시장을 혼란시키기도 했다.

정부관계자가 "일정을 밝힐수 없다"고 하면 곧 "전격실시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증시가 흔들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쪽에선 "정부가 실명제를 실시할 생각이 없다"면서
일정을 제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금융실명제는 반드시 실시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정부가 실명제 실시일정을 선뜻 제시하지 못하는 건 실명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 탓이다. 미리 일정을 밝혔다간 5공때처럼
실시하지도 못하고 부작용만 초래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2일 신경제5개년계획을 최종 확정하고나서 대기업회장들과 만난
김대통령이 거듭 "실명제는 반드시 한다"고 밝힌것을 보면 앞으로 남은
문제는 성공적으로 시행될수 있도록 타이밍과 사전준비책을 결정하는
일이다.

최근 청와대의 고위당국자는 실명제실시일정은 대략 3~4개월전에 제시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또 경제성장이 7~8%수준으로 높아졌을 때가
적당한 시기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최고 통치자의
결정사항이어서 경제사정에 따라 바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명제실시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론 이른바 단계적실시와
부동산투기억제대책을 들수있다.

먼저 금융거래를 실명화한뒤 2,3단계에서 종합과세를 실시하자는 것이
단계실시안이다. 또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는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한 다음 실시하자는 얘기다. 다시말해
투자수익면에서 금융자산이 부동산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구조를 미리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실명제실시는 신경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신경제5개년계획"에 제시한 금융개혁방안중엔 실명제처럼 진통을
겪어야할 개혁방안이 적지않다. 제도가 바뀌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기득권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으려니와 시행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2금융권에 대한 소유지분제한이다. 단자 증권 보험등
비은행금융기관이 대기업들의 사금고화해 경제력집중을 초래하고 있으니
은행처럼 지분을 제한하자는게 이 정책의 골자다.

은행에 대해 이미 시행하고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고 보아 넘길수도 있다.
경제력집중완화를 촉진한다는 명분상으로도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바로 이문제에 대해 주무부서인 재무부는 강력히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야 대주주지분이 낮아 시행에 문제가 없지만 제2금융권은
지분이 50~60%나 되는 곳도 있다. 사실상 강제적으로 소유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어 시행상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무부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론에는 재무부의 의견이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비은행의 경우에도 소유지분한도를 설정하고 97년까지 소유한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앞으로 시행과정에서
제2금융권의 반발이 꽤나 드셀 것으로 보인다.

이해집단의 반대에 못지않게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건 부처간
이기주의이다. 정책금융축소,농수축협의 통폐합등이 그런예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주장을 명분이 약하다하여 쉽게 무시할수도 없다. 민감하게
움직이는 돈을 다루는 금융개혁일수록 더욱 그렇다. 낙후된 금융분야의
개혁이 절실한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할 것임에
틀림없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