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를 겪으면서 어렵게 실시됐지만 선거는 끝났다. 이제 과도정부는
새로 구성되는 정통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각부처는 인계인수업무를 준비하는 외에는 별로 할일이 없어 허탈한
상태였다.

나자신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과도정부가 끝나는 즉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럴형편이 못됐다.
서울대상대는 내분이 일어나 거의 휴교상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최문환교수를 학장으로 영입,교수진용을 전면 개편하고 있었다.
서울대상대로의 복귀는 단념해야만 했다. 실은 정부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도 없지않았다. 그러나 내마음대로 되는것도 아니요 설사
남을수있다해도 혁신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너무나 강렬하고 성급했기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새로 태어나는 민주당정부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니 정통정부로서 영도력을 기대해볼수도 있었지만
민주적절차를 밟으면서 그많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을것이
예상됐다.

나는 신변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새정부가 아직 들어서지않은 어느날 장면의원이 부른다기에
혜화동자택으로 찾아가 뵈었다. 우선 당선축하인사부터 드리고나서 조용한
내실로 안내되었다. 새정부가 들어서면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권을 담당할 준비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가 폭주해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있지만 그중에서도 시급한 난제가 인사문제라고 잘라말했다.
그것이야 신상필벌로 처리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오히려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전원개발문제가 시급한것이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한다.
이문제는 자유당때 결말을 짓지못하고 현안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결말을
짓는 과정에서 논란은 있겠지만 난상토의끝에 결정지을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인사문제는 그와 성질이 다르다. 차관과 같은 별정직은 별문제가
아니다. 중앙관서의 국장이나 지방관서의 장이 자진해서 물러난다면
모르되 그냥 내보낼수는 없다. 좌천을 시켜도 그대로 가서 버티면
어떻게할 도리가 없는것이다. 인사가 침체되면 서로가 불목하고 인화에
금이 간다.

이런 사정은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처음 60만병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충원할 때는 기구가 커지면서 자리도 많이 불어나니 별문제가 없었다.
승진이 빨랐던 장성은 석달에 별하나가 불어났다는 일화도 있거니와
8기생중에는 대령으로 3년이 지나도 진급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장면의원도 처음에는 신상필벌로 인사문제는 쉽게 해결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했겠지만 막상 총리가 되고나서는 가장 고심한 문제의 하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여북했으면 국무회의 결의로 일급지 세무서장이나 세관장을 내보내면서
그대신 국방부로부터 두명의 대령을 재무부의 과장과 사무관으로
받아주었겠는가. 처음에는 "예비사단"을 없앤다고까지 하더니 두명의
대령을 받아주었으니 그야말로 혹을 떼려다 다시 붙이는 꼴이 되고말았다.

오랜 산고끝에 국민이 다같이 목마르게 기다리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생했다. 비록 상징적지위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대행이 아니고 제대로의
법통을 이어받을 대통령이 아닌가.

윤보선대통령의 취임축하연이 경회루에서 열렸다. 거기서 미대사관의
헨델센문정관을 만났다. 그가 나에게 총리는 누가 될것같으냐고 물었다.
이문제를 깊이 생각한바 없어 무심결에 윤대통령이 구파이니 김도연의원이
총리가 될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웃기만하지 별말이
없었다.

결국 윤보선대통령이 같은 파인 김도연의원을 총리로 임명했으나 국회에서
몇표가 모자라 실패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김도연선생이 총리가
되었으면 했다. 그분은 나의선친과 미국서 같이 유학했고 돌아와서는 같이
사업도 했으며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역시 같이 옥고도 치렀다. 그뿐아니라
나는 그분의 장남과 막역한 사이다.

섭섭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으나 그런 친분을 떠나서 냉정히 생각한다면
역시 대통령이 구파에서 나왔으니 총리는 신파를 밀어주는것이 도리가
아닌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