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동안 우리경제는 저성장의 깊은 늪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심한
진통을 겪었으나 최근 수출과 제조업생산이 미동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도되고있다.

86~91년 6년간의 경기과열기를 회고해보면 86~88년에는 해외경기의 호황과
이른바 3저(저유가 저금리 저환율)효과에 힘입어 우리나라 수출이 연평균
21%의 높은 신장세를 보였고 제조업 역시 연평균 17%의 근래 보기드문 높은
증가세를 나타냈었다. 이에따라 경제성장률도 같은기간에 연평균 13%에
육박하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에 달하였다.

89년에는 노사분규로인한 임금급등과 근로의욕해이,해외수요의 감퇴등으로
인해 수출신장세가 마이너스 5%로 크게 하락하였고 90~91년중에도 연평균
7%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수입은 수출이 극히 저조했던 89~91년중에도
건축경기의 과열,재정지출의 증가등 내수의 폭발적인 확대로 연평균 15%의
높은 신장세를 유지했다. 이에따라 국제수지는 89년이래 계속 악화되었다.
경상수지는 88년 1백42억달러 흑자에서 91년에는 87억달러 적자로
반전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우리의 공산품수출이 극히 부진한 이유는 세계경기후퇴라는
대외요인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대내적으로 민주화라는
전환기적 진통으로 인해 우리나라 공산품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주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우리의 수출시장
점유비중이 모두 크게 하락하였다. 미국시장의 경우 88년 점유율이
4.6%였으나 92년 3.1%로 줄었고 일본시장에서는 6.3%에서 5.0%로
감소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주수출시장이 말레이시아 태국등 동남아
개도국과 중국에 각각 31%와 21%씩 뺏앗긴 셈이다.

우리경제가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있는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질서는 근대사에서는 보기드문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독일의 통일,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EC(유럽공동체)통합등이 현실로 나타났다. 동북아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중반까지 겪었던 민족적 좌절을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자존을 지켜가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우선 우리의 경제력을 가급적 빠른 속도로 신장시켜
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경제력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한나라의
경제력이란 한마디로 그 나라의 경제규모와 저축의 크기에 의하여 결정되며
이는 오직 빠른 경제성장에 의해서만 얻어질수 있다. 또한 빠른
경제성장은 총체적 생산성향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여 공산품수출을
다시 확대하고 우리의 주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시장셰어를 다시 회복
확대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우리의 수출시장을 동남아 EC 동구의
구사회주의국가 중남미등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한편 국민생활의
질적향상도 동시에 도모해 나가야 한다. 총체적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광의의 사회간접자본부터 조성해야한다.
사회간접자본이란 수입이 거의 불가능하며 필요한 시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해야 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광의의
사회간접자본으로는 다음 일곱가지를 들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윤리적 정신적인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사회간접자본의 형성이다.
생산성향상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언행을 좌우하는 것은 마음이다.
온국민이 옳은 정신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열심히 일한데 대한 올바른 평가기준이 설정되고 이기준이
준수될때 비로소 신바람나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근로자와 기업가간의 동반자적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직업윤리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둘째 지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형성이다. 즉 올바른 교육을 통하여 적절한
인적자본을 개발 양성하는 일이다. 기능인력이나 고급두뇌인력 뿐만
아니라 고도의 문학및 예술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동시에 기술개발및
문화수준향상을 위한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난 30년간 제조업은 연평균 약15%의 고속성장을 했고 이러한 제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연평균 약9%의 높은 경제성장이 가능했다. 제조업이
연평균 15% 성장했다면 30년동안에 약 65배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나라가 이렇듯 빠른 제조업성장과 건설업성장에 필요한 공과대학
졸업자를 미리 양성해 놓지 않았다면 과연 이러한 제조업성장과 이를
뒷받침해준 건설업성장이 가능할수 있었겠는가. 향후 경제성장의 성패는
첨단지식산업의 육성과 이를 뒷받침할 고급두뇌인력의 양성에 달렸다.
우리는 1백만명이 넘는 대학재수생과 직장재수생을 내면서 기능인력과
고급두뇌인력이 벌써부터 부족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물리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다. 수출과 산업생산의 애로가
되고있는 도로 항만 창고 내륙컨테이너기지건설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종합화물유통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도시교통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80년대 중반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화물유통량이 크게 증가한데다
승용차까지 급증함으로써 수송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부 경인및
남해고속도로등에서의 주행소요시간이 86~89년 3년동안 2배이상 늘어났다.
서울~부산의 경우 왕복 소요시간이 14시간에서 28시간으로,서울~인천간은
45분에서 90분으로 각각 증가했다.

넷째 제도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형성이다. 시장경제를 바탕으로하는 모든
제도와 관행을 우리 문화와 여건에 맞도록 개편,정착해 나가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낡은 제도와 생각때문에 얼마나 많은 낭비요소가
존재하는가. 정부의 각종 법령과 조직은 물론 금융산업구조와
관행,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및 산업조직,그리고 기업문화가 조속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개방경제체제의 구축이다. 시장개방은 통상마찰을 완화하고
비효율적인 산업의 경쟁을 촉진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결코 피한다고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기업의 국내진출과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은 우리에게 부족한 기술을
습득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수도 있다.

여섯째 정부의 정책결정과 기업의 경영전략결정의 민주화이다. 몇사람의
지도층이 정부정책과 기업전략을 결정하여 집행부에 내려주는 이른바 톱
다운(Top-down)방식으로는 복잡다기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어렵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민간주도-정부협조형
시장경제체제의 구축,즉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사회정책운용방식을 정착시키는 동시에 국가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발전전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형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태평양지역국가들의 정치.경제체제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동해 환황해를 끼고있는 한반도는 동북아지역의
공산품 생산 무역 교통 통신 금융등의 중심지가 될수있는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각 나라 체제의 상이성을 극복할수 있는 중심지역(Hub
country)내지 가교적 역할을 담당할수 있는 지리적 경제적 기본여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여건을 갖추어
가는데 인적.물적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것이 또한 국내산업의
대외경쟁력 향상을 위한 여건조성,즉 광의의 사회간접자본 형성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지적한 광의의 사회간접자본형성을 통해 총체적 생산성을 향상해
나가는 동시에 국민생활의 질적향상도 달성해야 된다.

농어촌 생활환경의 개선,서민주택문제의 해결,교통난 해소,사회보장제도의
확충,부동산 투기근절,환경개선등의 대책을 꾸준히 추진함으로써
일반대중의 생활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국민생활의 질적향상을 어느정도
달성하지 않고는 국가경쟁력의 향상을 도모할수 없기 때문이다.

광의의 사회간접자본을 조성해 나가면서 국민생활의 질을 높여 나가려면
경제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이해증진과 공감대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운용방식을 하루빨리
정착시킴으로써 우리실정에 맞는 "한국형 경제발전모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