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강호
동군(동군)이라고 했고,오사카(대판)가 본거지인 히데요리를 지지하는
이시다 미쓰나리(석전삼성)라는 무장이 이끄는 군사를 서군(서군)이라고
했다. 그 동군과 서군이 세키가하라(관원)라는 곳에서 천하의 패권을
결판짓는 싸움을 벌였는데,양군의 군사가 도합 20만에 이르렀다.

세키가하라라는 곳은 동서가 4킬로,남북이 2킬로밖에 안되는 좁은
땅이었다. 말하자면 고양이 이마만한 곳에서 20만이나 되는 군사가
개미떼처럼 뒤엉켜서 물고뜯고 치고받았던 것이다.

그 전투를 "세키가하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내전(내전)이라고 한다.

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도쿠가와는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정이대장군)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고 에도
막부(막부)를 세웠다.

막부란 장군이 국가를 통치하는 기구를 말한다. 말하자면
무단정권(무단정권)이다. 천황은 선반 위에 얹어놓고,장군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에도 막부는 가마쿠라(겸창)막부,무로마치(실정)막부에 이어 일본의
역사상에 세번째로 들어선 막부였다.

도쿠가와는 야망도 큰 사람이었지만,권력을 유지하는 능력도
탁월해서,자기가 죽은 뒤에도 자손 대대로 정권이 계승되도록 막부의
기능과 국가의 체제를 빈틈 없는 것으로 짜 나갔다.

만득자 하나만을 남기고 숨진 도요토미와는 달리,우선 그에게는 자식들이
수없이 많았다. 정력도 절륜이었던 모양으로 처첩(처첩)을 열일곱이나
거느렸다. 그는 칠십오세에 죽었는데,칠십세 때에 열세 살의 동첩(동첩)을
맞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여자들로 하여금 열한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도합 열여섯 명의 자식을 낳게 했다. 그 가운데 네 명은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아무튼 대를 잇는데는 오히려 남아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정권이 잘 계승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넘보는 적이 없어야 한다.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도쿠가와는 세키가하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적 진영에 직접 가담한 무장들은 모조리 잡아서 죽여 효수(효수)를 하기도
했고,그쪽 편을 든 다이묘들은 영지 몰수와 유배형으로 처리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지가 않아서 그는 에도 막부를 세운 뒤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전국의 다이묘들 가운데서 그전에 도요토미에게 은혜를
입어서 언젠가는 반기를 들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 인물을 미리 차례차례
제거해 나갔다. 그 방법은 암살이었다. 우선은 충성을 다하는
터이니,쳐서 무찌를수는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