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학 사회과학,특히 경제학은 그 발전역사를 보면 한시대를 지배한
여러가지 방법론과 학설등이 있었고 근본적으로 각기의 영역에서 독립된
학문으로 발달되어 왔다.
그러나 두 체계를 잘 관찰해보면 기계와 경제학과는 다소 견해차는 있으나
생명체의 애널러지(유사)로 논의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율적 제어" 가능
기술학에서 "인간기계론"이나 경제학에서의 "재고론"을 볼때 두 논리간엔
애널러지의 대조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인 기계가 인체의 기능과 능력을 대행시키려는 것인데 대해 후자인
경제는 인체의 순환기능과같은 생리기능에 주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두
체계는 사회적인 생산행위가 기계적인 파라미터 조작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점에 애널러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일개의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시스템의 입력(공정환율과
김리,공공투자등)을 조작함으로써 시스템의
출력(국민총생산,물가,국제수지등)을 적의하게 제어할 수 있으며 또 그렇지
않고선 국가경제가 성립될 수 없다는 케인즈의 논리가 인위적으로 설정된
시스템(시장)에 균질의 양품을 경제적인 효과를 고려해 표준품종을 다량
생산해내는 생산기술의 확립만이 일국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시킬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 양체제의 공명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이들 두 신앙은 인류를 자연으로부터 유리시켰었다. 문명은 바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과학은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행동을 취급하였고 과학기술은 자연속의 일부로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취급하였던 것이었다. 결국 이와같은 과학에대한 인식은 오늘날의 지구촌
환경문제를 자초하게 된다.
한편 이것과 상응한 또 하나의 견해가 있었다. 생명체론적인
"기계관""경제관"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경제의 생성.발전.몰락의
과정을 밝힌 마르크스경제도,실은 생명체의 애널러지측면에서 경제를
파악,관리하려는 것이었다. 기술과 경제를 생명체의 애널러지로 보다 높은
차원에서 공론할수 있다는것은 생체의 항온성 유지기능(Homeostasis)등이
피드백과 같은 개념으로 제어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공감대형성이
가능하다고 본것이었다. 이와같은 생각은 방법론에 차이는 있었으나
세계경제계와 기술계에서도 1930년대초의 경제공황이래 40여년이나
지속된다. 특히 케인즈의 "경제일반이론"은 선진자본주의제국의
경제정책운용의 기조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 이론도 새로 생긴 학파로부터
근원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도전의 근본은 케인즈경제사상의 근원이 전술한 기계론적이라는 것이었다.
비판측의 대표격인 하이에크는 케인즈경제를 평해서 "리성의 남용" 또는
"지적교만"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비판은 경제와같은 사회현상을 기계의
기구와같이 제어가능한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점에 표적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비판은 길가의 개가 짖는 소리정도로 무시되었었다.
이성제일주의 비판
지금부터 4반세기전 미국 대통령으로 존 F 케네디가 선출되었던 때였다.
미국은 물론 이 지구상 어느곳에서나 "이성"에의 신뢰는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이 시기는 마침 필자가 학교생활을 할때였고 지금 그때 읽었던 H J
라스키의 "신앙,이성,문명"을 재차 넘겨보며 이데올로기의 무상을
실감한다.
미국은 케네디 정권의 발족과 동시에 동부 이스터블리먼트라 불려지는
지적 엘리트들이 속속 워싱턴으로 몰려 와서는
차별,빈곤,불평등,남북문제등의 제문제가 "이성"을 동원함으로써
극복되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후에도,그 뒤를 이은 존슨의 "위대한 사회"건설이라는 목표하에 이성이
꾸려 가야될 진로를 한층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케네디,존슨의 민주당
정권을 지지해온 자유민주주의의 경제사상은 시장만능을 주장하는
신고전파의 경제사상에 케인즈 주의를 혼합한 "신고전학파조합"이라고
칭하는 경제사상이었다.
시장만능 경제체제가 소득분배의 불평등,환경오염,인종차별등 수많은
사회악을 자초하게 되리라는 주장을 앞세워,그와같은 사회악을
근절하기위해서도 정부의 계획적인 개입과 관리는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업합리주의 복권
즉 생체적인 기능으로서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그것이 불안전한 것으로
인식하고 약물에 의한 보완이 불가결하다는 경제사상이었고,기술계 역시 이
경제관에 보조를 맞추어 중후장대의 기술혁신이 장려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시대의 조류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기술계의 메커트로닉스 등장은 기계기능을 단순 순차제어에서 기억과
판단등을 겸비한 지능제어기능을 주축으로 자율성을 지향한 지적기계의
등장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건강한 생명체와의 애널러지로서 경제를
보았을때,고전파의 경제사상이 돌연스러운 부활이 아닐수 없다.
건강체에의 약물투입은 백해무익한 것임을 인식한 것이었다. 어째서
이시기에 이와같은 사고가 생겼는지 궁금한 일이지만,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몇가지 있다. 첫째 1974년에 돌발한 석유위기에 대처하기위해
"감양경제"라는 명목하에 기업합리주의가 복권하였다는 점이다.
석유위기에 직면하기 전까지는,특히 일본에선 정부주도형의 경제운용이 그
기초였으나 또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론이
성행되었었다. 그러나 석유위기는 공해방지가 어쩌고,복지사회의
건설과같은 반응 좋은 일들을 논할 때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기업
스스로가 석유위기를 극복해 내었다는 자신감이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둘째 경제는 시장경제의 틀내에서 계획의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서,그
발상의 근저엔 사회주의 경제에의 동경이 뿌리깊게 박혀있었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주의에 대해 연민을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케인지언 경제사상이 사회주의의 이미지 다운과 더불어
퇴색되어 갔다는 것을 들수있다.
환경등에 관심 고조
셋째 과학기술의 만능사상이 후퇴되고 생명,건강,환경에대한 관심이
높아져 중후장대에대한 중화학 공업에의 관심이 퇴색되고 경제를 보는
관점도 종전 기계의 논리에서 생명의 논리가 빛을 찾게 되었다.
넷째 교육수준의 향상과 대중화,그리고 정보화의 진전이 "현명한 정부와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통제구상이 "현명한 대중과 어리석은 정부"라는
역전의 구상을 낳게 하였다는 것. 따라서 케인즈 경제주의자의 경제관이
전자를 전제로 한 것임은 자명한 일이지만 이 구상이 역전되면 시장만능의
고전파 경제관이 스스로 소생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는 것.
다섯째 종전 사회설계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던 기계론적인 경제관은
퇴색하고 이를 대신한 생명체론적인(시장만능의)경제관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여섯째 이들 제 개념과 사상을 구현시킬 수 있을만큼 첨단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들수 있다.
즉 종전 기계기술이 강성을 신앙으로 한 "기계문명"이었다면 새로
전개되는 새 기계문명은 로보트로 대명되는 메커트로닉스와같은 기존
기술의 복합기술로서 컴플라이언스(강성의 역수)와 같은 스케일로 신뢰되는
문명시대일것이다.
다원적가치 조정을
90년대는 기계와 경제에서 "생명의 논리"가 중요시되듯 기계와 경제와의
애널러지성격이 생명체를 개재시킨 공존공영의 시대인것 같다. 따라서
21세기를 향해 이와같은 문제와 새 개념에 대응하기위해선 이들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과학기술에의 새 틀이 조급히 짜여져야 된다.
문제 파악을 극히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에서,쌍방을 항상 고려하면서
일종의 조화를 구해 다원적인 가치를 조정해야 한다. 거기엔 최선의
해결을 구하려는 것보다 저항이 적은 차선책을 구하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치 집안의 일을 해결하는데 유일 최고 최적의 해결책이 없듯이
가정학적인 관리가 바람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