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사주간지 타임은 매년 신년호표지에 "올해의 인물"을 게재하고
깊이있는 분석 전망보도를 하곤한다.
그런 타임지가 82년 인물대신 컴퓨터를 골라 세인의 관심을 모으더니
89년 1월2일자에는 둥근지구를 선정, 또한번의 "예외"를 연출한 바 있다.
지구를 선정한 까닭은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공해로 인한 생태계의 타괴, 온난화현상, 폐기물홍수, 그리고 인구
폭발로 위기에 처한 지구행성의 참단한 현실과 가공할 미래를 고발하면서
인류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한 바 있다.
환경문제는 결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타임지의 경고는 그 심각성을 보다 리얼하게 전세계에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세계는 내년 6월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유엔주관의 지구정상회의를
준비중이다.
환경문제는 풍요의 산물이다.
끝없이 추구돼온 성장과 발전의 결과로 인류가 스스로 빚어낸 재앙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는 풍요와 정반대되는, 빈곤의 재난이 확산되고
있다.
수천 수백만의 인류가 굶주림과 기아로 생존자체를 위협당하고 있다.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인구는 지금 어림잡아 5천망명으로
전세계인구의 1%를 헤아린다.
또 그 분포는 비단 아프리카(2천9백만)에 그치지 않고 방글라데시
(1천만), 이라크의 쿠르드족난민(1백50만), 알바니아를 비롯한 동구
난민과 아프가니스탄, 콜레라로 죽어가는 페루등 지구촌전역에 퍼져
있다.
빈곤과 난민의 글로벌화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유엔을 중심한 국제기구를 통해
구원노력을 전개하고는 있으나 워낙 엄청나고 많은 문제가 얽혀 사정이
개선되기는 커녕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들을 기아에서 건져내는데만 4백만톤의 골물이 소요된다.
또 방글라데시가 태풍피해복구와 이재민구호에 당장 14억달러의 원조를
호소하고 있으나 약속된 것은 33개국에서 2억1천8백만달러뿐이다.
냉전시대의 종식으로 패권주의표적에서 멀어진 검은 대륙과 제3세계에
대한 선진열강들의 무관심과 인색함을 개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들은 제3세계대신 동구, 또 그보다는 자국민의 생존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빈곤문제는 분명 세계의 또다른 얼굴이다.
풍요가 빚은 환경문제와는 다른 각도에서 인류의 위기, 지구촌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또 이 재난은 자연이 빚어낸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가 빚어낸 인재라는 점, 그 극복이 21세기의 또다른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에티오피아와 수단의 가뭄은 벌써 오래된 얘기지만 그것을 극복
못하는 인류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으며 내전과 민족분규 지역분쟁
등으로 세계도처에서 난민과 이민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은 결국
인간에게 그 책임이 귀착된다.
엄청난 부와 첨단과학문명을 이룩한 인류가 세계적인 빈곤과 참상의
도미노현상에 무력한 현실은 실로 세기적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최근 1백주년 회칙을 통해 인도주의와
논리의식의 황폐화를 개탄하면서 제3세계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우리는 이런 세계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환경문제와는 또다른 야누스적 지구촌의 빈곤문제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할일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계를 넓게 보면서 우리를 볼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진로를 찾을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고 우리 스스로 서로를 할퀴면서 대권다툼에 눈이 어두워
사회를 번번이 멍들게 만들어 국민적 에너지와 국가적 자원을
소모하고만 있어선 안된다.
우리자신의 빈곤문제 극복은 물론 세계의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에
동참할 수 있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각을 넓히고 내용적으로
튼튼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