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산불 직후 고운사 사찰림 항공 사진. 사진=그린피스
산불 직후 고운사 사찰림 항공 사진. 사진=그린피스


지난 2025년 3월. 경북 의성 산불로 고운사 사찰림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사찰림 248.87헥타르(ha) 중 97.61%가 피해를 입었다. 한국 사찰림 산불 피해 사상 최대 규모였다. 고운사는 한국 불교계 최초로 사찰림 자연복원을 선언했다.

고운사는 강원대학교 식물생태학 연구팀 및 그린피스, 지역 환경단체와 손잡고 자연복원에 나섰다. 연구팀은 국토지리정보원이 보유한 100년 전 지형도와 1960년대 항공사진을 통해 숲의 구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했다. 또 산림입지 토양도·토지이용도·식생도 등 기존 자료를 토대로, 다음 세 가지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인공위성 사진 분석 결과, 산불 1년만에 사찰림 유역은 평년 수준의 약 70%를 회복했다. 산불 이전이 침엽수림 주종의 숲이었던 반면, 산불 이후에는 활엽수림으로 조성되고 있었다. 식생 회복탄력성을 회복하면서 산불만 아니라 산사태에도 강한 숲으로 변화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침엽수 단순림, 산불에 취약

피해가 이토록 컸던 데에는 식생 구성이 작용했다. 연구팀의 1차 연도 조사에 따르면, 산불 직전 사찰림의 약 84%가 소나무 단순림이거나 소나무가 우점종인 혼합림이었다. 송진이 많은 소나무는 한번 불이 붙으면 나무 꼭대기까지 번지는 가장 강한 화재인 수관화(樹冠火)로 발전하기 쉽다. 실제 사찰림 피해의 49.57%가 수관화로 분류됐다. 일제강점기 지형도를 보면 해당 지역은 100년 전 사찰림 핵심부만 소나무림이었고 주변은 활엽수림이 더 많았다. 한 세기 사이에 침엽수가 광범위하게 우점화된 결과가, 2025년 3월 사찰림 97%의 산불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연구팀이 식생을 고려한 복원 사업을 펼친 결과, 사찰림의 76.6%에서 새로 자란 식생이 땅의 3분의 2 이상을 덮고 있었다. 헥타르당 평균 3922.2본의 맹아가 자라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의 맹아 재생이 두드러졌다.

소나무는 산불 후 천천히 고사하고 맹아 재생 능력도 없지만, 굴참나무·신갈나무 등 낙엽활엽수는 살아남은 뿌리에서 빠르게 새싹을 틔운다. 그 결과 산불 전 58.51%를 차지하던 소나무림은 0.58%로 급감했고, 참나무류가 약 87%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본래 우리나라 산지는 온대 몬순형 낙엽활엽수림대로, 이규송 교수 연구팀은 고운사 유역이 신갈나무·굴참나무가 잘 자라는 유역이라고 밝혔다.

가장 빈번하게 관찰된 재생 식물은 참싸리였다. 이규송 교수 연구팀의 목본층 군집 조사에서 참싸리는 중요치 13.66%로 1위를 기록했고, 굴참나무(9.40%)와 신갈나무(8.65%)가 그 뒤를 이었다. 참싸리는 콩과 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해 공기 중 질소를 토양에 고정한다. 산불로 척박해진 토양에 먼저 자리 잡아 흙을 비옥하게 만들고, 그 위에 큰 나무가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선구종(pioneer species)의 전형적 역할이다.

연구팀은 식생 회복탄력성과 토양 안정성, 두 진단을 한 지도 위에 겹쳐 사찰림 유역 전체 지역의 회복 상태를 종합 평가했다. 그 결과 사찰림 유역의 60.6%가 자연복원으로 충분히 식생 회복탄력성을 가지면서 큰 비에 대한 토양침식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로 나타났다. 식생 회복탄력성이 높고 토양도 안전한 1순위 지점이 사찰림의 56.3%(226.1ha)를 차지하며 ‘아주 높음’ 등급이 되었다. 여기에 ‘높음’ 등급 4.3%(17.2ha)를 더하면, 사찰림 면적의 60.6%(243.3ha)가 자연복원만으로 충분히 회복되고 있는 안전한 구간이다.

놀라운 자연복원의 회복탄력성

고운사 사찰림이 1년간 보여준 자연복원은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학계는 지난 10년 동안 자연복원이 인공조림보다 생물다양성과 식생구조 회복에서 우월하다는 메타분석 결과를 일관되게 보고해 왔다.
2017년 호주국립대학교 등 다국적 연구진이 133개 연구를 분석한 결과, 자연복원이 인공조림보다 생물다양성 회복에서 34~56%, 식생구조 회복에서 19~56%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는 사실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보고된 바 있다.

이어 케임브리지대학교와 IUCN이 참여한 다국적 연구가 2020년 <네이처>에 발표되며, 전 세계 훼손지의 15%를 우선 복원하면 멸종이 예상되는 종의 60%를 막으면서 약 299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정량적 우선순위 지도가 처음 제시되었다.

최근인 2024년에는 듀크대학교와 세계은행 등이 참여한 연구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되며, 자연복원이 비용 효율성에서도 식재를 크게 앞선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중 핵심 표현은 ‘효과적인 복원(effective restoration)’과 ‘효과적인 보전(effective conservation)’이다. 인간의 눈에는 오래 걸리는 것으로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자연복원이 효과적인 복원의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한국의 산불피해지 복구는 오랫동안 인공조림의 반복이었다. 1996년 이전까지 산불피해지는 무상 의무조림 등 인위적 복원이 표준이었다. 피해목을 베고 새 나무를 심는 방식이 산림 복원의 거의 유일한 절차였다. 전환점은 1996년 강원 고성 산불이었다. 당시 자연복원 주장이 처음으로 여론화되면서, 산림 당국은 고성군 죽왕면에 약 100ha의 자연복원연구지역을 설정했다. 그러나 전체 피해지 3762ha 중 자연복원이 적용된 면적은 약 2.7%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인공조림으로 복구되었다.

본격적인 변화는 2000년 동해안 산불에서 시작되었다. 약 2만3794ha의 피해지에서 자연복원과 인공조림이 처음으로 49 대 51의 비율로 적용되었다. 이때 환경부 공동조사단의 정연숙·이규송 교수 등이 정립한 자연복원 기법은, 이후 국내 산불피해지 복원의 학술적 토대가 되었다.

본 보고서의 데이터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산불 피해를 입은 보호지역에 자연복원을 맡겨두면, 산불에 강한 활엽수가 회복탄력성 98%로 자라난다. 이는 같은 산불 후 침엽수의 회복탄력성이 약 40%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자연복원은 단지 푸르름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다음 산불에 더 강한 숲을 만드는 과정이다. 자연이 스스로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자리에 임도를 까는 것은 산불 대응의 본래 목적과 어긋난다.

산불피해지 복구 전 진단 단계가 제도화될 필요는 여기에 있다. 진단 → 평가 → 복원 → 모니터링의 4단계 체계 안에서, 자연복원 가능성이 확인된 지점은 자연복원으로 두고, 토양 안정성이 위협받는 지점은 최소한의 인공 보강으로 대응하는 진단 기반 복구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업이 시행된 후에도 자연복원의 회복 추이를 24개월 이상 장기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다음 복구 사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자연복원을 위한 우선순위는

산불피해지 복구 시 자연복원이 우선 순위로 자리잡으려면, 우선적으로 거버넌스가 받쳐주어야 한다. 산림은 산주의 재산임과 동시에, 사회 전체 자원이다. 자연복원을 선택한 산주가 행정 절차, 모니터링, 학술적 자문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가 자리 잡아야 한다.

또 민관 거버넌스가 자리 잡아야 한다. 본 프로젝트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를 비롯한 지역사회 연대체와 강원대·상지대·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등 학계, 그리고 고운사라는 산주가 함께 만들어갔다. 시민단체가 연구를 매개하고, 학계가 데이터를 제공하며, 산주가 현장을 열어주는 협력 모델이 가능했다.

자연복원 사례의 표준화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고운사를 포함해 1996년 강원 고성, 2000년 동해안 산불피해지 등 한국에는 이미 자연복원 사례들이 누적되어 있다. 이들 데이터의 통합 관리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 타깃 2의 모니터링 헤드라인 지표에 활용될 수 있다. 위성 데이터, 식생 조사, 동물 카메라 트랩 데이터 등 분산 보유된 모니터링 자료를 통합·공개하는 공공 플랫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산림청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협력 구조가 산불피해지 복구 영역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 산림 관리 정책과 생태계 복원 정책이 상호보완 관계로 운영될 때 한 부처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산불피해지 복구의 방향이 결정되던 관행이 변화할 수 있다. 2026년 4월 운영을 시작한 자연환경복원지원센터는 이 협력 구조의 거점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