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값 무작정 끌어올리더니…아시아서 외면 당한 하이네켄
세계 2위 맥주 제조사인 하이네켄이 연간 가이던스(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여파로 맥주 가격을 올린 탓에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급감한 탓이다.

하이네켄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올해 상반기 맥주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6%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태평양에서의 감소 폭이 13.2%로 가장 컸다. 이밖에 중동‧동유럽‧아프리카(-6.5%), 유럽(-4.8%), 미국(-1.5%) 등 전 지역에서 맥주 판매가 주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과 나이지리아에서 전체 판매 감소량의 절반 이상이 초래됐다.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베트남이 경기 둔화에 직면한 영향이 특히 컸다는 분석이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지난 5월 연료 보조금이 폐지되면서 생계 위기에 놓인 이들이 맥주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베트남에선 매년 1월 열리는 새해맞이 축제 ‘뗏(tet)’을 대비한 맥주 재고가 과도하게 비축되는 이슈도 있었다. 하이네켄 측은 재고 문제와 관련해 “거의 해결된 상태”라고 밝혔다.

두 국가 외 지역에서의 전반적인 실적 부진은 가격 인상에서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이네켄 맥주 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12.7% 오른 상태다. 하이네켄 측은 “전례 없는 수준의 상품 및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판매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6.3%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2.2%, 8.6%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 하락 폭은 하이네켄 예상치(4.8%)를 큰 폭으로 웃돌았다.

돌프 반덴 브링크 하이네켄 최고경영자(CEO)는 “가격 인상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었다”며 “가격 정책의 누적된 효과로 상반기 판매 실적이 둔화했지만, 하반기에는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헤럴드 반덴 브링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완화한 것과 관련해 “필연적으로 비용 하락을 수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계획은 없다”고 언급했다.
하이네켄 주가. (자료=야후파이낸스)
하이네켄 주가. (자료=야후파이낸스)
시장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RBC캐피털마켓의 제임스 에드워드 존스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에게) 미안한 기색 없이 가격을 무작정 끌어올린 하이네켄의 결정은 당황스럽다”며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맥주 시장에서 하이네켄 브랜드가 갖는 가격 결정력에 대한 테스트는 실패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예상 대비 실적이 악화하자 하이네켄은 올해 연간 영업이익 증가율 전망치를 0에서 한 자릿수 중반대로 낮춰 잡았다. 원래 예측은 한 자릿수 중후반대였다.

러시아에서의 영업 손실도 실적 악화에 한몫했다. 하이네켄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에서 철수를 약속했지만, 이를 완전히 지키지 않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미국 예일대 조사에 따르면 하이네켄은 철수 계획을 밝힌 지 1년이 지난 후에도 러시아 내에 7개의 양조장과 18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덴 브링크 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러시아 사업을 일부 철수한 이후 지금까지 201만유로어치의 자산 가치 하락이 있었다”며 “우리는 러시아 사업의 장부상 가치를 0으로 감가상각했다. 단지 (러시아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러시아 사업부를 사들일 인수자를 찾았다고 발표했지만, 규제 당국의 승인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날 네덜란드 증권거래소에서 하이네켄 주가는 전일보다 7.97% 급락한 89.14유로에 마감했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면서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까지 밀렸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