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ESG] 스페셜 리포트
현대식 섬유 공장 창고에 보관된 롤 원단과 기타 자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식 섬유 공장 창고에 보관된 롤 원단과 기타 자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의류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기업의 관심도 성장 전략보다 수익성·비용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공급망 불안정성은 원자재 가격 변동성을 높이고 있으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와 탄소가격제 확대가 새로운 비용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글로벌 패션 어젠다’가 최근 공동 발간한 <패션 CFO 아젠다>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에 주목했다. 지속가능성이 비용과 리스크, 성장 기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이를 재무적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비용과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인 동시에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패션산업 공급망 배출량의 약 70%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줄일 수 있으며, 일부는 비용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약 20%는 생산 공정 효율화와 원부자재 사용 절감, 운송·물류 최적화 등을 통해 비용 절감과 배출량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나머지 약 50%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 등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조치를 통해 감축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재무로 읽는 법

EPR, 순이익 4% 줄인다

반면 EPR과 탄소가격제 도입은 새로운 비용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EPR은 제품 생산자가 수거·선별·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이 2028년까지 섬유 제품에 대한 EPR을 구축하도록 의무화했다.

BCG는 연매출 50억~100억 달러 규모의 대형 패션 기업을 기준으로 EPR 비용이 2030년 매출원가(COGS)를 약 1.1% 높이고, 순이익은 약 4% 감소시킬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제도 적용 국가가 확대될 경우 연간 EPR 비용은 2026년 100만~300만 달러 수준에서 2030년 3000만~6000만 달러로 늘어나고, 2035년에는 최대 1억2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EU에서는 제품의 순환성과 환경 영향을 반영해 수수료를 차등 부과하는 ‘에코 모듈레이션(Eco-modulation)’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재활용 원료 사용을 확대하고 제품 순환성을 높여 관련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환경 현안을 넘어 비용 구조와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재무 의제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지속가능성이 기업의 비용 구조와 투자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CFO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 CFO는 단순한 비용 관리자를 넘어 지속가능성 이슈가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의사결정 주체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재무로 읽는 법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실제 경영 의사 결정에 반영한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BCG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CFO는 지속가능성을 핵심 경영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를 재무 부문을 포함한 전사 의사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한 기업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경영 전반에 내재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핵심은 재무 통제와 재무 계획, 자본 배분 전반에 지속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업은 관련 성과를 측정·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예산 편성과 투자 심사 과정에서 환경·사회적 리스크와 기회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또한 설비투자, 인수합병, 신규 사업 모델 등 주요 투자 의사결정에서도 장기적 가치 창출 가능성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8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행사장에 케어링 로고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8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행사장에 케어링 로고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케어링, 2015년부터 환경비용 관리

일부 기업은 이미 이러한 접근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기업가치 창출과 연결하고 있다.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어링(Kering)은 2015년부터 환경손익계산서(EP&L)를 도입해 탄소배출, 물 사용, 오염, 폐기물 등 가치사슬 전반의 환경 영향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급망 내 주요 환경 리스크를 파악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관리해 왔으며, 2015년부터 2023년까지 EP&L 집약도를 58% 감축했다. 이는 지속가능성을 별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아닌 투자와 경영 판단의 기준으로 활용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속가능성은 비용 절감과 리스크 관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성장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다. H&M그룹은 중고 패션 거래 플랫폼 셀피(Sellpy)에 투자하며 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성장 전략으로 육성해 왔다. 그 결과 셀피 매출은 2022년 7억5400만 스웨덴 크로나(1203억원)에서 2025년 18억4400만 스웨덴 크로나(2943억원)로 증가하며 순환 비즈니스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 어젠다는 규제 대응과 공시 체계 구축을 넘어 공급망 탈탄소화, 순환 비즈니스 모델 확대, 차세대 소재 개발로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기 둔화와 원가 상승, 공급망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모든 과제에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CFO의 역할은 지속가능성 투자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정된 자본을 어디에 배분할지 판단하고, 지속가능성과 재무 성과를 함께 고려해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속가능성 전략은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규제 대응과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둔 ‘리스크 완화’, 에너지·자원 효율화를 통한 ‘비용 최적화’, 친환경 제품과 순환 비즈니스를 수익원으로 삼는 ‘성장 동력 확보’, 차세대 소재와 사업모델 혁신을 추진하는 ‘전환 촉진’이다. 기업은 자사의 사업 특성, 공급망 구조, 재무 여건에 맞춰 우선 추진 과제를 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환경 변화에 따라 단기 리스크 대응을 넘어 비용 절감, 신규 수익 창출, 장기 경쟁력 확보로 전략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재무로 읽는 법
지속가능성, 재무전략화 시급

현재의 지속가능성 전략이 미래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규제 강화와 기술 발전, 기후 리스크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패션 기업은 투자 우선순위와 실행 방식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성 대응의 무게중심은 단순한 리스크 관리에서 비용 효율화, 공급망 회복탄력성 확보, 사업모델 혁신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패션 기업의 비용 구조와 투자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칠 변화는 EPR 확대, 탄소가격제 확산,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 책임 있는 구매 관행에 대한 요구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EPR은 재활용 비용을 기업의 직접 비용으로 만들고, 탄소가격제는 저탄소 원부자재 전환과 공급망 배출량 관리의 중요성을 높인다. 이상기후와 지정학적 갈등은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공급 차질을 키우며, 노동·인권 이슈는 공급업체 관리와 정보 공개 수준을 기업가치 평가 요소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본격화되면 지속가능성은 ESG 부서의 별도 과제가 아니라 비용 구조, 성장 전략, 자본 배분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현재 전략을 고정된 전제로 보기보다 시장과 규제 환경 변화에 맞춰 투자 우선순위와 실행 방안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재무 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와 경영진, 사업부를 비롯해 공급망과 금융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요하다. CFO와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는 목표 설정부터 성과 측정까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며, 각 사업부 역시 지속가능성을 경영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탈탄소화와 섬유 재활용 역시 개별 기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업계 차원의 협업과 금융·정책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ESG 조직만의 과제가 아니다. 비용 구조와 경쟁력,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재무 의제로 자리 잡은 만큼 이를 경영 전반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기업이 더 높은 회복탄력성과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재무로 읽는 법
안태희 BCG코리아 MD 파트너
“지속가능성, 재무 이슈가 됐다”


- BCG는 왜 지금 지속가능성을 CFO의 핵심 의제로 설정했나.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친환경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원가 구조, 공급망 안정성, 기업가치와 연결된 재무 이슈가 됐다. 글로벌 패션 기업의 실적 발표에서 지속가능성 언급은 2022년 대비 약 3분의 1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기후변화로 면화·울 등 원자재 가격은 최대 2배 수준의 변동성을 보였다. 섬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규제도 대형 패션 기업 순이익을 최대 4%까지 잠식할 수 있다.”

- 이런 진단을 한국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나.

“한국 기업에는 더 예리하게 적용된다. 주요 패션·소비재 기업은 베트남, 방글라데시, 중국 등 기후 취약 지역에 생산을 집중하고 있어 원가 변동에 민감하다. 유럽연합(EU)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EPR 규제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온다. ESG 관심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재무 리스크는 오히려 쌓이고 있다.”

- 한국 기업에 가장 먼저 부담이 될 요소는.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리스크가 가장 크다. 극단적 기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면화와 울의 가격을 이미 두 배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중기적으로는 EPR이 결정적 변수다. EU는 2028년 섬유 EPR 전면 의무화를 앞두고 있으며, 한국도 포장재 중심 EPR이 섬유·의류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 CFO가 투자 측면에서 이러한 현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기존 투자수익률(ROI)과 회수기간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다. EPR 미대응 비용, 탄소가격 전가에 따른 마진 영향, 공급 차질 가능성 등 ‘무행동의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해야 한다. 탄소 한계감축비용 분석도 재무기획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 패션산업 온실가스의 약 20%는 비용 절감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투자로 줄일 수 있다.”

- 한국 기업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ESG팀 중심 대응에서 재무·전략 중심 대응으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CFO와 CSO의 공식 협업 체계, 지속가능성 핵심성과지표(KPI)와 재무 성과의 연동, 이사회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ESG팀이 단독으로 재무 전략화를 추진하는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요나스 로렌첸 BCG 코펜하겐 MD 파트너
카타리나 마르티네스 파르도 BCG 뒤셀도르프 MD 파트너
안태희 BCG코리아 MD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