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스페셜 - 창간 5주년 기념 특별좌담
- ESG, 기업의 경쟁력을 다시 묻다
왼쪽부터 현석 연세대 교수, 김미현 SK증권 상무,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왼쪽부터 현석 연세대 교수, 김미현 SK증권 상무,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기업 경쟁력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녹아들고 있다. ESG 경쟁력을 갖춘 일부 기업은 우수한 지배구조를 기반으로 자본 접근성을 높이고, 자본 조달 비용도 낮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관세 장벽에 대응해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도 ESG 경쟁력이 활용되고 있다.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왜 ESG가 기업 경쟁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에 <한경ESG>는 전문가 좌담을 통해 ESG가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바꾸는 지점을 짚어봤다.

좌담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ESG 경쟁력을 좋은 보고서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변화한 경영 환경을 읽고, 이를 데이터, 회계, 금융, 지배구조에 반영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공시가 강화되면 ESG 정보는 재무제표와 기업가치 평가에 더 촘촘히 연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금융시장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본 비용을 산정하고 투자 조건을 조정하게 된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는 단기 주주이익과 장기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자본 배분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구체적으로 기후 리스크와 녹색전환 계획은 자산 손상, 충당부채, 비용, 수익 전망 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에서는 ESG 데이터가 신용평가와 채권 금리, 대출 조건 등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전환금융은 고배출 산업의 생존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수단으로 꼽혔다.

ESG는 더 이상 선택적 평판 관리가 아니라 기업이 미래 시장에 남기 위해 갖춰야 할 경영 체계이자 자본시장과 공급망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평가다. 좌담에는 김미현 SK증권 상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현석 연세대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 내용을 대화형으로 재정리했다.


자본 비용 낮추는 ESG
공급망·금융시장 새 기준
보고서 넘어 경영 체계로


- ESG가 공시, 금융, 공급망, 지배구조와 연결되고 있다. ESG가 경쟁 우위 요소가 되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하 류 대표) “1980년대 말에는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면 ‘우리나라 산업이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장면을 보면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떠올린다. 동일한 현상에 대한 사회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만큼 기업도 이를 빨리 인식해야 한다. 특히 ESG는 기업의 자본 비용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혈액이 자금이라면 ESG는 그 자금의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그런 점에서 ESG는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이하 백 명예교수) “가장 중요한 전제는 경영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전히 ESG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사회공헌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지속가능성을 설명할 때도 친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 경영이라는 세 가지 표현으로 요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맞는 말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기후변화나 환경 문제는 기업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위험이 기업의 재무성과와 생존에 영향을 준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나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강조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재무적 중요성 관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ESG가 경쟁력이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규제 대응도 중요하지만 시장 변화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서는 고객사의 요구가 달라지고 있고, 소비자 인식도 변하고 있다.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젊은 세대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흐름이 있다. 공급망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고객사를 상대하는 협력업체라면 그 고객사가 요구하는 온실가스, 인권, 공급망 데이터를 맞춰야 한다. 반대로 구매자라면 협력업체의 ESG 리스크가 자사의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ESG는 경영 환경의 변화로 다뤄야 한다.”

현석 연세대 교수(이하 현 교수) “기업의 경쟁 우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제품 품질이 좋고 가격이 낮으면 경쟁력이 있었다. 생산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더라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탄소를 줄이고 에너지를 덜 쓰면서 생산해야 경쟁력을 갖는다. 외부 환경도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ISSB 공시, 유럽연합(EU) 공급망 실사지침(CSDDD), 글로벌 고객사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 등이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한다. 다만 ESG를 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자동으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ESG가 핵심 사업 모델과 연결돼야 한다. 투자 계획, 공급망, 지배구조, 검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많은 기업이 ESG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실제 회의록을 보면 ESG와 직접 관련 없는 안건이 많다. 여전히 ESG를 비재무적 요인으로만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비재무적 요인이 재무화될 때, 즉 투자 의사 결정과 기업 전략에 반영될 때 기업 경쟁력이 된다.”

김미현 SK증권 상무(이하 김 상무) “ESG는 자본시장의 언어이자 투자의 문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 ESG 자체가 곧바로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ESG 요소를 얼마나 자본의 언어로 잘 번역하느냐, 그리고 그것이 실제 경영 의사 결정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투자 의사 결정 과정에 ESG 요소가 얼마나 고려되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라가는 안건에 ESG 체크리스트를 반영하는 방식이 있다. 지금은 고려 요소에 가깝지만, 데이터가 축적되고 핵심성과지표(KPI)가 정교해지면 가격과 자본 배분에 영향을 주는 경쟁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공시 의무화 타고
재무제표로 들어오는 ESG
데이터 신뢰성 중요


- ESG 공시가 의무화되면 ESG 정보와 재무제표의 연결 고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IFRS에서도 기후 리스크와 전환 계획을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회계 측면에서 ESG는 어떻게 다뤄지는가.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진=이승재 기자
백태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진=이승재 기자
백 명예교수 “이 부분은 중요하면서도 오해가 많은 영역이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회계의 일부가 됐다거나 ESG가 곧바로 재무제표 안으로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안에는 IFRS를 만드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있고,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만드는 ISSB가 있다. IASB는 재무제표 작성 기준을 만들고, ISSB는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만든다. 두 기구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다만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이 생기고 있다.

ESG 관련 정보가 이미 지난 회계연도에 재무적 영향을 미쳤다면 기존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에 반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기후 리스크로 자산 손상 가능성이 커졌거나, 환경 관련 우발 채무가 발생했거나, 특정 설비의 경제성이 훼손됐다면 기존 회계기준 안에서도 반영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이 나와서라기보다 기존 회계기준이 기후와 ESG 이슈에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ESG 정보가 재무제표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고 봐야 하나.

백 명예교수
“그렇다. 과거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CSR 보고서에 가까웠기 때문에 재무제표와 강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의 재무적 위험과 기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투자자와 감사인은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나온 리스크가 재무제표에는 어떻게 반영돼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 질문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다만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이미 실현된 단기 재무 영향은 결산 재무제표의 문제다. 반면 미래 단기·중기·장기 영향은 추정 재무제표와 기업가치 평가에 가까운 문제다. 기업이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설비투자, 비용 증가, 자산 전환, 수익 기회가 미래 재무성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설명해야 한다. 투자자는 그 정보를 현재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 이처럼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제표와 같지는 않지만, 재무제표와 기업가치 평가를 연결하는 정보가 되고 있다.”

현 교수 “금융시장에서도 이 연결성이 중요하다. 투자자가 기업을 평가할 때는 크게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미래 현금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리스크다. ESG 대응을 잘하는 기업은 규제 변화나 공급망 요구에 대응하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리스크 관리가 부족한 기업은 자본 조달 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평가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 탄소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공급망 배출량 같은 데이터가 제대로 측정되고 검증돼야 한다. 데이터가 신뢰받지 못하면 투자자가 이를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김 상무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ESG를 공시 담당 부서의 업무로만 볼 수 없다. 회계와 재무, 전략 부서가 함께 봐야 한다. 특히 금융기관이나 투자자가 ESG 정보를 볼 때는 단순히 좋은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리스크와 수익성,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본다. 결국 기업이 ESG를 자본의 언어로 번역하려면 내부 데이터 관리 체계와 의사결정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자본 비용에 반영되는 ESG
금리 차별화의 전제, 데이터
정성 평가까지 가격화


- 금융시장에서는 ESG가 신용평가, 회사채 금리, 대출 조건 등에 반영될 수 있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ESG가 기업가치 평가와 자금 조달 조건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나.
현석 연세대 교수. 사진=이승재 기자
현석 연세대 교수. 사진=이승재 기자
현 교수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반영된다. 기업가치 평가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과정이고, 그 할인율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들어간다. ESG 리스크가 큰 기업은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자본 조달 비용도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규제와 시장 변화에 잘 대응하는 기업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고, 자본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시장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녹색채권은 자금 용도가 친환경 프로젝트로 제한된다. 그런데 해당 프로젝트가 실제로 얼마나 환경 성과를 냈는지에 따라 금리가 정교하게 달라지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금리를 차등화하려면 환경 성과를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일본과 홍콩에서는 디지털 녹색채권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친환경 프로젝트에 사물인터넷(IoT) 장비나 인공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블록체인에 올려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면 금리 차별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는 아직 초기 단계다. 결국 ESG 금융은 데이터 기반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김 상무 “국내에서는 ESG가 아직 본격적인 가치평가 변수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회사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기 시작한 단계에 가깝다. 앞으로 이러한 판단이 축적되면 ESG 지표가 고도화되고, 기업별 목표나 평가 기준도 더 정교해질 수 있다. 다만 신용평가나 기업가치 평가에 ESG를 직접 반영하려면 기업이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정보가 신뢰할 수 있고 비교 가능한지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류 대표 “기업가치 평가는 정량적 요소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투자에서는 정성적 판단도 크다. ESG는 이 정성적 판단의 중요한 대리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남양유업 사례를 보면 대리점 갑질, 오너 일가 논란, 불가리스 사태 등이 이어지면서 브랜드 신뢰가 훼손됐고, 불매운동과 실적 악화, 주가 하락으로 연결됐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모두 정량화하기는 어렵지만 기업에 대한 신뢰와 평판, 지배구조 위험은 분명 기업가치에 반영된다. ESG는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격화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데이터와 공시가 정교해지면 그 반영 경로가 더 명확해질 것이다.”


ESG 기반 금융 공급
아직은 시기상조
연기금 움직임 있어야

- 주류 금융기관이 ESG 기반으로 금융 공급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어려운가. 특히 전환금융은 탄소집약 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금융 수단으로, 한국 산업 현실에서 중요한 어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김미현 SK증권 상무. 사진=이승재 기자
김미현 SK증권 상무. 사진=이승재 기자
김 상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현재 구조를 ‘보상과 페널티의 비대칭’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페널티 구조는 이미 시작됐다.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은 규제, 공시, 평판, 자본시장 평가에서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그 기업이 전환을 위해 투자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약하다. 그렇다 보니 ESG가 비용으로 느껴진다. 기회로 전환되려면 시장과 정책이 보상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전환금융 지침이 나오고,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의만 내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증권사가 전환금융 거래를 발굴하고 구조화하려면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자본 규제상 혜택이나 수익 보상이 뚜렷하지 않으면 영업 현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은행은 고객이 찾아오는 구조이지만, 증권사는 밖으로 나가 거래를 만들어야 한다. 전환금융이 활성화되려면 순자본비율(NCR) 같은 건전성 규제에서 위험을 경감해 주거나 보증, 정책금융, 세제혜택 같은 강력한 유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는 탁상공론에 머물 수 있다.”

현 교수 “전환금융은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한국 경제에는 고배출·난감축 산업이 많다. 이들 기업은 녹색금융 관점에서 불리하다. 그렇다고 국가 기간산업이자 수출산업인 이들을 시장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이 전환금융을 빠르게 제도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은 정부가 먼저 전환국채를 발행하며 리스크를 부담하고, 산업별 로드맵을 만들었다. 철강, 석유화학 등 업종별로 어떤 기술을 활용해 언제까지 얼마나 감축할지 경로를 제시한다.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전환 계획을 세우고, 금융기관은 그 계획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은 금융위원회가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내고 대규모 공급 목표를 제시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에 어떤 기준으로 자금을 공급할지에 대한 체계는 아직 부족하다. 환경정책, 산업정책, 금융정책이 따로 움직이면 전환금융은 작동하기 어렵다. 전환금융은 조율 문제다. 철강회사가 수소환원제철을 하려면 청정수소가 필요하고, 청정수소를 만들려면 재생에너지 전력이 필요하다. 수소 저장과 운송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적정한 탄소가격과 금융지원도 필요하다. 개별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류 대표 “전환금융과 함께 장기투자 문화도 중요하다. 패시브(지수 흐름을 따라 시장 평균 수익률 추구) 투자가 확대될수록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수탁자 책임)과 경영 참여(인게이지먼트(경영 참여))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기업과 대화하고 변화를 유도하려면 장기 보유가 전제돼야 한다. 몇 개월 보유하다 팔 주식이라면 운용사가 비용을 들여 주주권을 행사할 유인이 약하다. 국민연금 같은 장기 자금이 시장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ESG 데이터 공시와 시나리오 분석 등에서 상당히 앞서 있다. GPIF가 움직이면 다른 금융기관도 따라 움직인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이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민간자금이 전환금융과 지속가능금융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사회, ESG 경쟁력 중추
단기 주주이익과
장기 투자 간 균형 이뤄야


- ESG를 기업 경쟁력으로 만들려면 이사회와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ESG 경쟁력을 어떻게 봐야 하나.

류 대표 “최근 상법 개정 논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모든 주주로 확장되는 흐름이 있었다. 소수주주 보호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회사의 이익이 지배주주의 이익과 사실상 동일시되면서 소수주주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ESG 관점에서는 주의할 점도 있다. 주주 이익을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해석하면 단기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

국내 개인투자자의 평균 보유 기간은 길지 않다. 짧은 기간 안에 주가 상승과 배당,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물론 주주환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장기 설비투자, 연구개발, 환경투자, 이해관계자에 대한 자원 배분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가면 문제가 된다. 영국 회사법에는 ‘계몽된 주주가치’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주주 이익을 추구하되 장기적 관점에서 협력사, 종업원, 고객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에서도 이사회가 단기 주주이익과 장기 기업가치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

백 교수 “ESG는 결국 이사회가 전략과 미래 성공의 열쇠로 인식해야 한다. 환경이나 기후 이슈는 기술 문제가 많지만, 사회와 지배구조 이슈는 제도와 문화, 사람의 역량 문제다. 이사회가 ESG를 홍보나 보고서 발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경쟁력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사회 교육은 충분하지 않다. 사외이사 교육이 1년에 한두 번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법률가, 회계 전문가, 산업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이사들이 ESG를 전략과 자본 배분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특히 업종별로 이사들이 모여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ESG는 업종별 이슈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가 함께 학습하고, 다른 회사의 경험도 공유하면서 이사회 차원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현 교수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대학에서도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 이른바 CSO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기업 내부에서 ESG를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이를 최고경영진과 이사회 의사결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력은 아직 부족하다. ESG가 재무, 전략, 공급망, 법무, 공시를 모두 연결하는 영역이 됐기 때문에 경영진 교육이 중요하다.”

류 대표 “실무자들은 세계 규제 동향, 공시 기준, 고객사 요구를 따라가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있다. 문제는 실무자와 이사회를 연결하는 C레벨이다. 최고경영진은 대개 단기 성과로 평가받는다. 임기가 짧고, 1년 단위 성과 압박이 크다. 그러면 ESG처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과제를 추진하기 어렵다. 이들이 이사회 안건을 만들고 사외이사와 소통해야 하는데, 그 연결고리가 약하다. 결국 C레벨의 KPI에 ESG와 장기 가치 창출 지표를 의미 있게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ESG가 보고서가 아니라 경영 의사 결정으로 들어간다.”

김 상무 “금융회사도 마찬가지다. ESG가 전사 전략으로 들어가려면 경영진의 의사결정 체계에 반영돼야 한다. 실무 부서가 아무리 좋은 취지로 전환금융이나 ESG 금융을 추진해도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 안에서 설명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ESG를 자본 배분과 리스크 관리의 언어로 바꿔야 한다. 기업도 금융회사도 결국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