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에선 불가능했을 구글·메타의 증자
미국 빅테크는 작년까지 자사주 매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작년에만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457억달러, 메타는 262억달러어치 자사주를 샀다. 올해 들어 상황이 돌변했다. 인공지능(AI) 설비투자가 현금을 빨아들이면서 회사채 발행에 이어 증자까지 등장했다.

알파벳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올해 6월 500억달러 규모 주식을 발행했고, 400억달러어치 추가 발행도 열어뒀다. 규모도 놀랍지만 더 눈여겨볼 것은 증자 방식이다. 전체 900억달러의 절반을 의결권 없는 보통주(클래스C)로 조달하도록 설계했다.

이런 발행이 가능한 건 2014년 구글이 주식 구성을 바꾼 덕분이다. 당시 구글 주식은 의결권이 주당 1개인 보통주(클래스A)와 10개인 보통주(클래스B)만 있었지만, 의결권 없는 C주를 신설해 기존 주주에게 주당 1주씩 나눠주며 상장시켰다. C주는 의결권만 없을 뿐 배당·청산 권리는 A주와 같고, 발행 주식도 A주와 맞먹는 55억 주에 이른다. 이렇게 시장에서 검증된 C주였기에 A주와 1%도 차이 나지 않는 값에 대규모로 팔 수 있었다.

이는 창업자에겐 요긴한 장치다. 증자 전인 올 4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전체 주식의 10% 남짓을 보유하면서도 B주를 통해 의결권의 52.7%를 쥐고 있었다. C주 덕에 두 창업자는 의결권 희석을 최소화하며 사상 최대 증자에 나섰고, 추가 증자 여력도 확보했다.

메타도 지난주 올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구글이 12년 전 닦아둔 길에 들어섰다. 내년 1월 19일 의결권 없는 C주를 신설하고 기존 주주에게 주당 1주씩 나눠줘 거래시장을 형성한다. 메타는 이번주 최대 950억달러 규모 증자 계획도 내놨다. 우선 A주(225억달러)와 의무전환우선주(125억달러)를 통해 350억달러 조달에 착수했다. 이들 A주와 우선주는 금융사와의 선도계약 및 주식전환을 통해 향후 C주로 바꿀 수 있게 설계했다. 아울러 내년 이후엔 C주로 최대 600억달러를 추가 조달할 계획이다.

메타가 확보한 데이터센터 등 장기 계약·리스 약정액은 8000억달러 규모다. 올해 필요한 설비투자액은 최대 1450억달러다. 하지만 3분기 잉여현금흐름은 21억달러 적자다. 지분 13.4%로 의결권 60.6%를 쥔 마크 저커버그에게 C주 발행은 의결권 희석 없이 막대한 투자비를 조달할 수 있는 통로다.

구글과 메타의 자금 조달 전략은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한국엔 의결권 없는 보통주를 발행한 상장사가 사실상 없다. 우선주를 합쳐 의결권 없는 주식은 원칙적으로 발행주식의 25%를 넘을 수 없다. 이 한도로는 구글, 메타처럼 주당 C주 1주를 나눠줄 수 없다. 창업자 주식에 주당 최대 10표를 주는 복수의결권도 비상장 벤처에만 허용되고, 상장 3년 뒤엔 보통주로 바뀐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 지켜야 해 자회사 증자 여지는 더 좁다. 이렇다 보니 지분 희석을 부르는 증자는 지배주주에게 부담스러운 선택이 되기 쉽다. 기업이 알짜 사업을 자회사로 떼내 상장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은 이유다. 논란이 컸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과 상장도 이런 자금 조달 방식의 산물이다.

이제 그 출구마저 좁아지고 있다. 주주 충실의무를 앞세운 중복상장 규제 때문이다. 주가 하락까지 겹쳐 올해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은 26년 만의 최저인 케이뱅크 한 곳뿐이다. 자회사 상장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자 비상장 유망 계열사의 지분 20~30%를 인수하는 ‘그로스 투자’도 사실상 멈춰섰다는 게 사모펀드(PEF)업계 설명이다. 주주 반발과 당국 심사 강화로 증자 부담도 커졌다. 올해 9월까지 공모 유상증자는 1년 새 절반 가까이 줄었다.

메타가 C주 신설을 발표할 무렵 SK하이닉스는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계획을 접었다. 여야와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이라며 제동을 건 직후다. 규제가 해외 자금 조달 통로까지 막아선 셈이다. 중국 반도체업체의 추격 속에 미국 공장 증설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과제로 남았다.

물론 지분 희석을 걱정하는 기존 주주의 반발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빅테크 증자가 보여주듯 AI 경쟁은 기술뿐 아니라 자본 동원 능력의 싸움이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성장의 길을 열면서도 소액주주까지 그 과실을 함께 나눌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