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산 성조기 휘날리며…
10년 전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위대를 보기 시작한 것이. 물론 그전에도 시위대의 태극기는 있었지만 성조기를 세트로 챙기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스라엘 국기까지 함께 등장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점이었다. 그리고 길거리 태극기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런데 한국 경찰을 보고 중국 공안이라고 외칠 정도로 혐중 정서를 표출하는 그분들의 태극기, 그거 대부분 중국산이다. 상인들이 중국산은 깃대가 약하고 깃봉에 무궁화 무늬가 없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산을 권해도 ‘고객’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세트가 반값인 중국산을 집어 든다. 그리고 ‘차이나 아웃’을 외친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길거리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국내 국기 제조업의 매출은 급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그게 중국산 성조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왜 채플린의 말이 번쩍 떠올랐을까.

2024년 3월, 선거운동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갓 블레스 더 유에스에이 성경(God Bless the USA Bible)’을 구매하라고 지지자를 독려했다. 가격은 59.99달러, 배송비는 별도다. 그 성경은 본문 외에 미국 독립선언문, 헌법, 충성의 맹세 같은 것도 함께 인쇄돼 있다. 트럼프의 서명이 포함된 특별판은 1000달러였다. 그리고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훔쳐 갔다며 당선되면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매기고 4년에 걸쳐 전자제품, 철강, 의약품 등 중국산의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제대로 한판 붙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성경, 트럼프 일가 소유인 CIC벤처스가 항저우의 중국 회사에 하청을 줘서 제작했단다. 그 중국산 성경에 대한 로열티로 30만달러를 알뜰하게 챙겼다. 다시 채플린이 생각났다.

2020년 8월, 외교관답지 않은 강경 발언을 반복해 ‘싸움닭’이란 별명까지 얻은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글을 하나 올렸다. ‘만약 미국이 위챗을 금지하면 우리도 애플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위챗을 제재하려고 하자 이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아이폰을 불매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그 트윗의 끝에는 ‘Twitter for iPhone’이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이폰으로 아이폰을 불매하겠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로 발신한 거다. 바로 그 시점에 아이폰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아, 채플린.

지난여름, 정말 더웠다. 혹독한 더위로 짜증을 낼 ‘만반의 준비’를 장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행복한 광경을 보며 그 만반의 준비가 눈 녹듯 사라졌다. 정말 많은 젊은이가 ‘로카(ROKA)’ 티셔츠를 입고 무더위 속을 활보하는 게 아닌가! 로카, 왼쪽 가슴에 ROKA(Republic Of Korea), 등에 큼직한 글자로 KOREA ARMY, 그리고 왼쪽 소매에 태극기까지 새겨진 티셔츠다. 젊은 시절의 노란색 깔깔이, 전역하며 가져와 집에서 입은 방한복 내피처럼 이들 역시 전역하면서 군에서 입던 셔츠를 가져온 건가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패션소품으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매우.

몸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셔츠, 머리에는 미국 프로야구팀 모자, 입에는 ‘헬조선’을 달고 살던 친구들만 보다가 ‘드디어 훌륭해졌나’ 했는데 해군(KOREA NAVY)까지 즐겨 입는다는 사실에 ‘훌륭’을 넘어 ‘탁월’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렇게 깔끔한 디자인을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대를 이어 군에 납품한다는 젊은 대표와 미팅한 지 10분 만에 ‘만반의 준비’가 다시 복구됐다. 대부분 중국산이라고 했다. 왜 상표등록을 안 했냐고 물었더니 KOREA도 ARMY도 상표 등록이 안된다고 했다. 중국산 희토류가 없으면 첨단무기를 못 만드는 미군도 아니고, 중국산 ROKA라니.

하나하나를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니 역시 희극, 미국이 저런다고 자유무역이라는 큰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자유무역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주년이다. 그 대단한 책,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