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교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로 12차 전력수급계획과 송·배전망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짚다. 그러나 탄소중립 목표를 함께 고려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탄소 중립으로 향하는 가교 기술을 육성시켜 전환을 유도하는 유연한 전환 관리가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에너지 백년대계, AI 전기국가의 조건 인터뷰 ①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정부가 최근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인해 국내 에너지 및 첨단 산업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 등에 대규모 반도체 팹(Fab, 공장) 신설이 가시화되면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대전제와 첨단 산업 성장을 위한 전력 공급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한경ESG>는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와 만나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미칠 영향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확대의 불가피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현실적 경로에 대해 짚어 보았다. 이 교수는 “공장을 돌리는 메인 전원으로는 현재 재생에너지보다 산업단지 내부의 LNG·연료전지 발전 확대가 현실적”이라면서도 “환경적·경제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유연한 전환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번 플랜이 향후 정부의 전력 로드맵에 어떤 변화를 가져을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곳은 향후 수립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다. 지난 4월에 수요 전망이 발표된 바 있으나, 이번 메가 프로젝트 플랜이 나오면서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기존 전망에 반영되지 못했던 거대한 신규 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통상적인 오차 범위를 넘어서는 규모이며, 대략 20GW 안팎의 수요 증가 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는 신규 수요를 고려해 공급 계획과 에너지 믹스를 재구성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기존에 설정된 용인·평택에 추가해 호남권이 새로운 전력 소요처로 떠오른 만큼 송·배전망 계획 역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 새로운 공장 시설에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어느 정도 공급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부가 100GW 수준으로 설정한 재생에너지 공급 규모를 축소하거나 뒤로 미루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실제 전력 공급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호남권에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사실만으로는 공급 계획이 완벽해질 수 없다. 우선 아무리 가깝게 짓는다 해도 재생에너지 발전원과 산단 간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전력을 끌고 오는 망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른 출력 변동성이 심해 유연하지 못하므로, 정밀 공정이 필수적인 첨단 산단의 메인 전원으로 쓰기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산업단지에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지역 차원의 고민과 구체적인 기술적 대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팹의 운영을 위해 유연 전원인 LNG 발전 확대를 예상하고 있다.
“사실 반도체팹의 수요 자체는 가동이 시작되면 매우 안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수요가 출렁여서가 아니라, ‘공급의 안정성’ 때문에 LNG가 필요한 것이다. 호남권에 반도체 팹이 생기더라도, 지리적 위치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 때문에 현재의 재생에너지만으로는 24시간 중단 없는 전력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전력망 운영 효율화가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확충이나 원전 신설은 주민 수용성 문제와 건설 기간(원전의 경우 최소 10년) 때문에 적기 공급이 어렵다. 따라서 결국 송전망이 완공될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동시에 계통 부담을 낮추려면 산업단지 내부에 LNG 열병합발전소나 연료전지와 같은 ‘온사이트(On-site)’ 설비를 구축해 열과 전기를 동시에 직접 공급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다.”
- 온사이트 발전 자원으로서 연료전지와 LNG의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연료전지는 스택(stack)을 쌓는 방식이어서 부지와 연료 공급처만 확보되면 3년 이내, 혹은 그보다 더 빨리 신속하게 건설할 수 있다.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신속한 전력 공급 측면에서 훌륭한 보조 자원 역할을 할 수 있어 미국 데이터센터들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LNG의 경우 현재 글로벌 터빈 공급이 매우 타이트한 상황이지만, 계획적으로 산업단지 내에 위치시킨다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례처럼 주변에서 송전망을 당겨오는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한 밤에 태양광이 꺼지거나 비가 몇 달 동안 오는 상황에서 LNG가 가진 유연성은 전력계통 안정화에 필수적이다.”
- 글로벌 기업들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가 국내 기업들에게 여전히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최근 흐름을 보면 좁은 의미의 ‘재생에너지만 고집하라’는 요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원전이나 수소 등을 포함한 ‘무탄소 전원(CFE)’의 활용이나, 궁극적인 ‘탄소중립 이행’이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원을 대거 구매하고 있음에도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만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탄소중립 달성을 더 늦출 수 있다. 에너지원은 폭넓게 포용하되, 해당 자원의 ‘추가성(additionality, 환경보호만을 위한 탄소감축 노력)’과 같은 조건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최근 글로벌 흐름이다.”
- 호남 지역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으로 지정되어 있다. 미국의 텍사스처럼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어떤 인센티브나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에너지가 풍부하다는 것은 기업 유치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도권에 입지하는 것이 여전히 유리하므로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네거티브 규제 완화가 패키지로 제공되어야 한다. 미국의 텍사스가 황량한 지역임에도 혁신 지구로 성장한 것은 규제 자유와 세제 혜택 덕분이다.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려면 좋은 학교와 병원 같은 인프라도 필수적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분산특구 내에서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실험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LNG 온사이트 발전을 짓더라도 RE100이나 지속가능성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PPA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하는데, 지금은 계약 절차가 복잡하고 행정 부담이 크다. 분산특구 내에서만큼은 기업들이 여러 발전사업자와 자유롭고 간편하게 PPA를 맺을 수 있도록 계약 편의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의 설계와 운영 단계에서 탄소감축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전환금융의 형태는.
“환경적 고결성(environmental integrity)만 강조한다고 해서 결과가 담보되지는 않는다. 완전한 무탄소 기술(녹색금융의 영역)은 현재 기술적·경제적으로 아직 상용화가 어려운 불모지에 가깝다. 반면 100을 배출하던 고로를 전기로 등을 활용해 80이나 50으로 줄이는 기술은 전환금융의 영역으로, 당장 실행 가능하지만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완전한 녹색 기술과 산업 사이의 전환 단계에 전환금융의 지원이 없다면 기업들은 아예 전환을 포기하고 이전의 100의 배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잔디와 잡초를 명확히 구분하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전제로 하되, 본업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녹색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전환금융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 전력수요 폭증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와 기업에 제언을 부탁한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는 무엇보다 유연성이 필요하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유지하되 산업과 기술환경 변화에 맞춰 정책 경로를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롤링 플랜(rolling plan)’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산업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정 수준의 LNG 발전 활용을 허용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수소 혼소와 같은 기술 발전을 통해 탄소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산업 경쟁력을 희생하는 탄소중립이 아니라, 국부를 키우면서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이다. 쏟아지는 변수를 관리하며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키우는 전환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