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ESG 뉴스는 규제의 현실적 속도 조절과 기업 및 금융의 녹색 실리주의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럽이 옴니버스I 패키지를 타결하고 공시 속도 조절을 했지만, 일본과 한국은 ISSB 기반 지속가능성 공시를 받아들이면서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에 동참하고 있다.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2026 상반기 달군 ESG NEWS ① 규제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협정 서명식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손을 잡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경제DB
올해 상반기 글로벌 ESG 뉴스를 냉정히 평가하면 기업의 부담을 고려한 ‘규제의 속도 조절’과 ‘테크·금융의 녹색 실리주의 전환’을 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의 기후정책 후퇴(국제기구 재탈퇴 등)와 이에 맞선 유럽의 규제 정교화(CBAM 본이행 및 CSRD·ESRS 안착)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상반기였다.
그럼에도 지속가능성이 기업의 자율적 선언에 머물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2026년 상반기 글로벌 ESG 지형도를 보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와 유럽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필두로 법적 의무공시가 코앞에 다가왔다. 유럽발 공급망 실사 의무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과 한국의 ISSB 공시 채택도 눈에 띄는 뉴스다.
이와 맞물려 자본시장과 기업은 탄소 감축을 브랜드 이미지 제고용 선언이 아니라 철저한 비용 절감, 리스크 관리, 실질적 재무 이익의 렌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업은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면서도 전력·용수 절감 노력을 지속하거나, 캠페인성이 아니라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리스크만을 실질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등 ‘녹색 실리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한경ESG>는 올 상반기 전 세계 자본시장과 산업계를 뒤흔든 핵심 뉴스를 선정해 그 막전막후를 집중 분석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제공한국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공식 발표…스코프3 유예기간 부여 (2026년 2월)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의무공시의 시기, 대상 기업, 그리고 가장 논쟁적이었던 스코프3(가치사슬 전반의 배출) 포함 여부의 구체적 타임라인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자율공시 시장의 불확실성이 걷히고 본격적인 제도권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후방 공급망에 속한 중소·중견기업들까지 실질적인 데이터 대응 체계 구축에 돌입한 상반기 최대의 이정표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로드맵의 핵심은 2028년(2027 사업연도)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 우선 의무와 거래소 공시 선행 후 단계적 법정공시 전환이다. 특히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스코프3은 대상별로 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2031년부터 도입하기로 확정되면서, 기업들에 현실적인 준비 기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일본 금융청(FSA) 역시 일본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SSBJ)의 최종 확정안을 바탕으로 도쿄증권거래소(TSE)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Prime) 상장사에 대해 한국과 동일한 시점인 2028년부터 단계적 의무화를 단행했다. 특히 일본은 스코프3 공시를 원칙적으로 포함하되 매출액과 업종별로 차등 유예를 두는 ‘실리적 타임라인’을 구축했다.
2026년 5월 28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로스앤젤레스 항구에 있는 선박용 크레인 인근에서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미 정부 후퇴 속 ‘캘리포니아·뉴욕’ 주도 기후공시 전면 가시화 (2026년 상반기)
미국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 공시 규정을 전격 철회·재검토하며 소송전에 휘말린 사이, 주(State) 정부 중심의 규제 압박은 정점에 달했다.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기후기업데이터책임법(SB 253)의 첫 제정안을 확정하고 올해 8월 10일 첫 스코프1·2 매출 공시 데드라인을 고수했다.
이에 동조해 뉴욕주 상원 역시 매출 10억 달러 이상 기업에 스코프1~3 공시를 의무화하는 ‘기후기업책임법(CCDAA)’을 통과시키며, 미국 내 사업장을 둔 국내 수출 기업들에 실질적인 넷제로 증빙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연방 차원의 반(Anti)-ESG 소음과 무관하게 미국 내 대형 시장을 둔 글로벌 기업과 국내 수출 기업들은 이제 캘리포니아와 뉴욕이라는 거대 주법에 맞춰 실질적인 ‘넷제로 증빙’을 이행해야 하는 다층적 규제 리스크를 맞이하게 됐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 내 사업장을 보유하거나 현지 고객사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연방 규제 완화만 보고 대응 수위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미국 시장 내 지역별 규제 차이가 확대되면서 복수의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2026년 2월 26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외곽에서 유럽연합 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EU CSRD 옴니버스I 타결, 대폭 간소화 이면의 ‘핵심 타격’ (2026년 2~3월)
유럽연합(EU) 이사회가 CSRD 적용 대기업 기준을 직원수 1000명 이상, 매출액 4억5000만 유로로 상향하는 규제 완화 카드인 ‘옴니버스 I’을 타결했다. 이를 통해 대상이 약 5만 개에서 3000~5000개 수준으로 줄었다. EU공급망실사지침(CSDDD)도 직원 수 5000명 이상이고 글로벌 연 매출 15억 유로 이상인 초거대 기업으로 한정하며 규제 대상이 60% 이상 급감했고, 상장 중소기업을 의무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했다. 환경·인권 침해에 대한 고의·과실 입증 책임과 공급망 실사 범위도 전체 중 하류 부문(다운스트림)의 일부가 제외되는 등 의무가 줄었다. 상반기 중 EU 각국이 CSDDD를 국내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역외 기업에 적용할 세부 가이드라인도 가시화됐다.
유럽 대표 ESG 규제의 후퇴로 국내 수출 기업들은 일단 숨통이 트였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스코프3 데이터 제출 요건과 협력사 실사 의무는 살아남았다. 또 외형적 완화와 무관하게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을 위한 기술 장벽은 한층 교묘해졌다. 초거대 글로벌 바이어들이 자신들의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하위 공급망인 국내 중소·중견 부품사에 실사 의무를 전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023년 9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애플스토어에서 출시 당일을 맞아 탄소중립 인증을 받은 애플워치 시리즈 9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후 환경단체로부터 애플워치9에 대한 그린워싱 소송이 제기됐다. 사진=연합뉴스 그린워싱 감시의 사법화, ‘EU 그린 클레임 지침’ 최종 승인 (2026년 3월)
EU에서 ‘친환경’, ‘탄소중립 제품’이라는 모호한 마케팅 문구를 완전히 금지하고, 모든 환경성 주장에 대해 사전 인증을 받도록 하는 지침이 최종 승인되었다. 모든 환경성 주장은 원자재 조달부터 폐기까지 전생애주기(LCA)에 걸친 데이터를 기반으로 독립된 검증기관의 사전 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특히 실질적인 자체 감축 없이 외부 탄소 상쇄 크레디트에만 의존해 제품을 홍보하던 관행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지침의 최종 승인은 마케팅·홍보 부서의 단순한 가이드라인 준수를 넘어, 위반 시 글로벌 매출액 비례 과징금 등 기업의 생존과 브랜드 가치를 직접 타격하는 사법 리스크로의 전환점을 시사한다. 마케팅의 언어가 이제는 법적 판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