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자연자본을 투자원칙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의사결정에 적용하고 있다. 자연자본의 데이터 난제를 풀며 우선순위 중심으로 접근하여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③ 기후 이어 자연자본, 韓 기업의 직면 과제는 글로벌 투자기관 동향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이미 자연자본을 스튜어드십과 포트폴리오 관리의 핵심 의제로 편입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국부펀드(이하 NBIM)는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를 투자원칙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포트폴리오 의사결정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 3월 자연자본 리스크 평가 기준을 공개하며 관여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NBIM은 기업의 사업활동과 가치사슬이 토지·담수·해양 생태계에 의존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대상으로 자연 관련 기대사항을 제시한다. 기업이 자연 관련 리스크를 이사회 차원에서 감독하고, 전략과 위험관리 체계에 반영하며, 공급망까지 포함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 특히 자연 훼손이 중대한 경우에는 주주관여(engagement) 활동과 투자배제(exclusion)를 병행한다. 이는 자연자본 리스크 대응이 단순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판 관리가 아니라 사안의 중대성, 개선 가능성, 장기 재무위험을 고려한 투자판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아문디·블랙록의 사례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이자 NH-아문디 자산운용의 주주사인 아문디는 일찍이 2021년 ‘생물다양성 금융 서약(Finance for Biodiversity Pledge)’에 서명한 이후, 자연자본 보전(Natural Capital Preservation)을 기후변화와 함께 환경분야 핵심 투자 철학으로 다뤄왔다. 아문디는 2023년 수립한 고유의 생물다양성 정책에 기반해 삼림벌채, 수자원 이용, 심해 광물 채굴, 살충제 오남용 등 4대 핵심 영역을 지정하고 전사적 스튜어드십과 투자 프레임워크에 반영했다. 아문디의 관련 스튜어드십 활동은 2021년 165개에서 2024년 759개로 증가했으며, 이는 자연자본 이슈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장기투자자의 상시적인 기업대화 의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문디는 스튜어드십 활동뿐 아니라 투자 프레임워크 측면에서도 ‘회피(avoid)-감축(reduce)-촉진(favor)’의 3단계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첫째, 생물다양성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큰 기업은 논란, 관행과 정책, 사업활동을 기준으로 걸러낸다. 둘째,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는 생물다양성 발자국, 고영향 생물다양성 섹터, 생물다양성 점수 등 지표를 활용해 부정적 영향을 줄인다. 셋째, 폐수 처리, 폐기물 관리, 오염 저감,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 육상·해양 생물다양성 보전 등 생물다양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기업과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이는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가 단순한 배제 전략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구성과 투자기회 발굴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SG 반발이 거센 미국에서도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자연자본 대응은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026년 자연자본 주주관여 활동 보고서에서 ‘토지 이용·수자원·생물다양성’을 주주관여의 3대 우선 분야로 설정하고, 자연자본 리스크에 물리적으로 노출된 기업에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 권고 지표 기반 공시와 이사회 수준의 리스크 감독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은 2025년 2월 투자등급 회사채 중심의 ‘골드만삭스 생물다양성 채권(Goldman Sachs Biodiversity Bond) 펀드’를 출시했다. 유럽연합(EU) 지속가능금융공시제도(SFDR) 제9조로 분류된 이 펀드는 3~5년 내 3억~5억 달러의 투자 규모 조성을 목표로 하며, 생물다양성 보전 및 복원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하는 채권에 투자한다.
국내 금융사도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해야
TNFD 공시의 가장 큰 난제는 데이터다. 탄소 배출량은 아직 한계가 있지만 비교적 표준화된 지표가 존재한다. 반면 자연자본은 지역성, 생태계 특성, 공급망 복잡성이 크다. 같은 물 사용량이라도 물 부족 지역에서의 사용과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의 사용은 리스크가 다르다. 같은 토지 개발이라도 생물다양성 민감 지역인지 여부에 따라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단순 총량 지표보다 위치 기반 데이터, 산업별 중요성, 공급망 노출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듯 자연자본 공시는 데이터 난제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므로 완벽한 데이터를 기다리기보다 가능한 정보로 시작하고, 산업별·지역별 분석을 축적해 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모든 산업을 한꺼번에 평가하기보다 농식품, 화학, 제지, 건설, 유통, 의류, 광물, 에너지, 부동산 등 자연 의존도와 영향이 큰 섹터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서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스튜어드십 활동을 통해 투자대상 기업과 실물자산에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사업장과 공급망의 위치, 물 사용량, 산림 훼손 노출, 토지이용 변화, 오염물질 배출, 원재료 추적 가능성, 생물다양성 정책과 목표 등이 핵심이다.
국내 금융회사도 이제 기후 리스크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후 공시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금융 시장의 기본 언어가 된 것처럼, 자연자본 역시 머지않아 투자분석과 리스크 관리의 표준 항목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단순히 규제 대응 비용이 아닌 포트폴리오 회복력과 지속가능한 수익의 원천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