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가 잇달아 차세대 냉난방기로 불리는 히트펌프(전기 냉난방 장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지원 정책에 힘입어 히트펌프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중장기적으로 가스보일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5조 시장 열린다…히트펌프, 새 먹거리로 주목


‘친환경 바람’ 타고 주목받는 히트펌프

히트펌프는 땅, 물, 공기 등에 있는 미지근한 열을 압축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장치를 말한다. 냉매를 압축·팽창하는 과정에서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통상 투입한 전력량의 2~3배의 열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활용하지 않아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면서도 고효율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히트펌프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가정용 보일러 외 데이터센터 냉각, 산업용 에어컨 등에도 쓰인다. 특히 냉난방과 온수 공급을 일원화할 수 있어 에어컨과 보일러를 각각 설치해야 하는 기존 방식보다 효율성이 높다.

이미 유럽에서는 2800만 대가 공급되는 등 ‘주류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한 예로 노르웨이에서는 전체 가구의 약 60%가 히트펌프를 활용해 난방을 돌리고 있다. 히트펌프는 영하 28℃의 극저온에서도 가동할 수 있어서다.

한국에서도 히트펌프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냉난방과 온수 등에 쓰이는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화석연료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탈탄소를 위한 에너지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글로벌 탈탄소 기조에 따라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히트펌프가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이란전쟁 이후 히트펌프의 시장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와 천연가스 보급이 불안정해지자 각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히트펌프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7년까지 히트펌프 1000만 대를 보급하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전 세계 난방 수요의 약 55%를 히트펌프가 담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기후에너지환경부도 2035년까지 온실가스 518만 톤(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며 히트펌프 350만 대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관련 예산 144억5000만 원을 투입한 데 이어 건물 신축 시 히트펌프를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볼 예정이다.

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히트펌프 관련 내용을 담아 녹색금융 연계 기반을 다졌다. 이 외에 히트펌프를 설치한 가구는 전력 사용 구조에 따라 유리한 요금 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기존 주택용 누진제 외에도 일반 요금,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등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가전기업 ‘주도권 쟁탈전’ 나서

가전 사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히트펌프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국내 기업들도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0일 국내 주거 환경을 고려한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공개했다. 기존 보일러보다 효율이 4.9배 높은 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8%가량 줄일 수 있다.

공기의 열을 물로 전달하는 ‘에어 투 워터(A2W)’ 방식으로 편의성도 강화했다. 온돌 중심의 국내 주거 환경을 반영해 기존 보일러 배관을 변경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데워진 물이 바닥 배관을 타고 난방을 하고 온수를 공급한다. 이 외에 삼성전자는 삼성물산과 손잡고 아파트 보급용 히트펌프를 개발하고 있다.
LG전자 공기열원 히트펌프. (사진 제공=LG전자 )
LG전자 공기열원 히트펌프. (사진 제공=LG전자 )
LG전자는 지난 5월 일체형 히트펌프 보일러 제품을 국내에 출시했다. 이 제품은 가스보일러보다 에너지 비용을 40~60% 줄일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친환경 냉매(R32)를 사용하고 별도의 냉매 배관 공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 ‘LG 씽큐’를 통해 원격으로 제어할 수도 있다.

겨울철에 안정적으로 고온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정부 지원금까지 고려하면 사용 패턴 등에 따라 5~6년 정도면 초기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앞서 LG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5개국 10만 가구 이상을 대상으로 히트펌프를 공급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중소·중견기업도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올 상반기 내로 ‘공기열보일러’라는 이름으로 히트펌프를 출시할 계획이다. 여름철에는 냉방 기능을 제공해 사계절에 맞춰 냉난방 설비로 쓸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품질 확보에도 전력을 기울인다. 전국 대리점에 기본 설치 매뉴얼과 실습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오텍캐리어는 지난해 히트펌프를 회사의 주요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공식화했다. 이 회사는 앞서 ‘에코 히트펌프 솔루션(EHS)’을 공개했다.

일부 부품이 고장이 나도 히트펌프가 멈추지 않도록 설계한 게 강점으로 꼽힌다. 압축기 4대를 탑재해 난방 용량 저하를 최소화하고 따뜻한 공기를 꾸준히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미 전북 김제와 강원 원주, 전남 보성 등에 있는 기업에 설치돼 있다.

이 외에 대성히트에너시스도 여러 히트펌프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저소음·고효율 시스템을 통해 수영장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수영장 전용 히트펌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센추리는 인버터 스크롤 기능을 적용한 히트펌프를 내놓았다. 이 기능은 필요한 냉난방량에 따라 압축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고 전기료를 아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경동나비엔 히트펌프 보일러. (사진 제공 =경동나비엔)
경동나비엔 히트펌프 보일러. (사진 제공 =경동나비엔)
전 세계 시장도 8년간 2배 성장

업계에서는 히트펌프가 국내 가전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통상 히트펌프 설치 비용이 약 100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35조 원 규모의 시장이 새로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시장조사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히트펌프 시장 규모는 올해 1001억8000만 달러(약 145조 원)에서 2034년 2119억3000만 달러로 두 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보편화된 온돌 구조는 히트펌프와 열효율 측면에서 궁합이 맞는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상 히트펌프는 저온 난방에서 효율이 높다. 유럽식 라디에이터는 40~55℃의 온수를 필요로 하는 데 비해 한국의 온돌바닥 난방은 약 35℃ 수준으로도 난방이 가능하다.

다만 아파트 중심의 한국 주거 환경을 고려해 제품을 보완해야 하는 게 과제다. 한국의 아파트 비중은 77%로 알려져 있다. 베란다를 확장할 경우 실외기를 설치할 공간이 협소할 수 있고, 기존 난방 인프라와 설비가 충돌하는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히트펌프를 적용하려면 설비 기준과 전력 인프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싼 제품 가격도 히트펌프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통상 히트펌프는 일반 보일러보다 10배가량 비싼 편이다. 이에 정부는 단독주택 등에서 초기 시장을 형성한 뒤 적용 대상을 점진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