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칼럼
[칼럼] AX와 GX는 같은 문제의 두 얼굴이다


지금 한국 기업은 두 개의 전환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 전환(AX)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전환(GX)이다. 많은 경영자가 이 둘을 별개의 과제로 인식하거나 GX를 AX보다 먼 미래의 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그런 인식은 위험하다. GX는 이미 규제와 시장이라는 두 방향에서 동시에 기업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AX와 GX는 사실 같은 문제의 두 얼굴이다. 인공지능(AI) 서버 한 대는 일반 서버보다 5~1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AI 부문 전력소비가 2026년 1000테라와트시(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 전력을 화석연료로 공급할 경우 탄소 배출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AI를 활용하는 기업, AI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 모두 결국 에너지와 탄소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도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4월 여수에서 열린 녹색대전환 국제주간(GX Week)에서 ‘AI 시대 에너지 전략대화’가 핵심 세션으로 진행됐다. AX와 GX는 이제 같은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시대가 됐다.

규제 압박은 이미 현실이 됐다. 발표자료가 지적한 대로, 기업이 직접 대응해야 할 4대 제도 변화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첫째,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재정 의무를 본격 부과한다. 철강·알루미늄·화학 등 고탄소 수출품에는 탄소세 성격의 비용이 붙는다. 둘째,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이 계속 확대되며 배출권 구매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셋째,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에 가입한 글로벌 바이어들은 협력사에도 재생에너지 조달을 요구하고 있다. 넷째,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반 기후공시 의무화와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은 스코프(Scope) 3, 즉 공급망 전체의 탄소 측정과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 앞으로 탄소 비용 청구서가 날아오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업 현장의 충격도 구체적이다. 에너지 비용 급증으로 정유업계의 전력비는 58%, 철강업계는 24% 상승했다. 고탄소 설비는 투자 회수도 끝나기 전에 좌초자산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반면 선제적으로 저탄소 체질을 갖춘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탄소경쟁력이 곧 수출경쟁력인 시대에, 저탄소 제품을 먼저 확보한 기업이 글로벌 바이어의 선택을 받는다. GX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시장 진입 조건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까. 발표자료가 제시한 6대 전략 과제는 분명하다. 우선 에너지 원단위를 진단하고 고효율 설비 전환에 나서야 한다. 이어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스코프 1·2·3을 포함한 탄소 데이터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저탄소 제품 라인업 확대와 탄소발자국(CFP) 인증 확보도 서둘러야 한다. 신규 투자 심사에는 내부 탄소가격(Shadow Carbon Price)을 반영하고, 무엇보다 GX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팀 단독 과제가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최고운영책임자(COO)가 함께 주관하는 전사 차원의 거버넌스로 격상해야 한다. GX 대응은 단순한 규제 준수가 아니라 경영 시스템 전반의 구조 전환이다.

정부는 6월에 ‘대한민국 녹색대전환(K-GX) 추진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산업·수송·건물 전 분야에 걸쳐 녹색산업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이 전략은 기업에는 규제 로드맵인 동시에 사업 기회의 지도이기도 하다. 먼저 움직인 기업이 이 지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AI 전환 시대에 녹색전환은 선택이 아니다. 전환의 타이밍이 곧 경쟁력이다.

이준희 법무법인 바른 기업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