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도 주목했다…미국 소비 이끄는 바비의 '힘' [나수지의 뉴욕리포트]
요즘 미국은 영화 두 편으로 뜨겁습니다.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주인공입니다. '바벤하이머'라는 신조어가 나올정도로 흥행열기가 대단합니다. 바벤하이머의 흥행은 단지 문화적 현상 이상입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도 뛰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바비 영화를 보고, 관련한 상품을 사기 위해 꾸준히 지갑을 엽니다. 지난해가 코로나 이후 여행 수요가 급증했던 '보복 여행'의 해였다면 올해는 영화, 공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보복 경험'의 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만큼 문화와 관련한 소비가 미국 경기가 가라앉지않도록 든든하게 바닥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지난 7월 FOMC에서 '바비'의 흥행이 인플레이션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정도로 보느냐는 질문이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문화를 넘어 미국 경제를 흔드는 '바비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미국을 흔드는 '바비 크레이즈'

지난 4일 바비 관람을 위해 미국 뉴저지의 'IPIC'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IPIC은 영화를 보면서 음식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미국의 프리미엄 영화관 체인입니다. 관람 이틀전에 예매를 했는데 바비와 오펜하이머 둘 다 두명이 붙어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맨 앞열, 중간이 떨어진 자리를 겨우 예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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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소위 '대박 영화'의 기준이 관객수 1000만입니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박스오피스 10억달러(약 1조3000억)가 흥행 척도입니다. 바비는 개봉 3주차만에 북미에서 5300만달러, 이외 지역에서 7400만달러를 벌어들여 매출 10억달러를 넘겼습니다. 바비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10억달러를 넘긴 영화 감독이 됐습니다. 최단 기간에 10억달러를 벌어들인 영화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국의 영화관은 고전했습니다. 사람들이 좀처럼 다시 오질 않았습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영화를 보는 시청습관이 바뀐 것 아니냐. 영화관의 위기, 나아가서 영화산업의 위기라는 말 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비가 코로나 이후 첫 흥행 테이프를 끊은겁니다.

미국인은 왜 바비에 열광하나?

현지에서 보는 바비의 성공요인은 다양합니다. 외신에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은 여전히 공동의 경험을 하길 좋아한다는섭니다. 영화를 관람할 때 핫핑크옷 입고 나와서 인증샷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또 다같이 영화관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웃는 시점에 맞춰 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건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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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도 바비의 흥행 요인입니다. 지금 20~40대 여성들은 어린시절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어릴적 추억이 담긴 인형을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메시지를 입혀 재탄생시킨 게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겁니다.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벗어나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한 문화기업이 되려는 마텔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마텔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논 크리즈는 2018년 취임 후 마텔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고 이와 관련한 부수입을 창출하는 마블처럼, 마텔도 IP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겠다는겁니다. 크리즈 CEO는 취임 후 마텔이 보유하고 있는 IP를 활용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만들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제작 배급사인 미라맥스 출신인 로비 브레너를 마텔 필름 책임자로 앉히고, 마텔의 IP를 활용한 영화를 제작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마텔이 자사 IP를 활용해 제작하려는 영화만 13편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첫 결과물인 바비가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마텔의 사업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바비, 미국 인플레를 끌어올릴까?

미국에서 부는 '바비 열풍'의 의미는 단지 마텔이라는 개별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바비의 흥행이 미국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에서 바비와 관련한 제품을 내놓은 기업들은 100여곳이 넘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켄의 집'처럼 꾸민 집을 빌려주는 이벤트를 연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바비의 상징인 핫핑크 색을 활용한 향초, 화장품, 의류 등 다양한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바비와 콜라보한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파월도 주목했다…미국 소비 이끄는 바비의 '힘' [나수지의 뉴욕리포트]
바비와 관련한 물건들이 날개돋힌 듯 팔리면서 바비가 미국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달 FOMC 기자회견에서는 바비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바비 관람 열풍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흥행으로 미루어봤을 때 미국의 소비는 꽤 좋은 상태인 것 같은데, 이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때문에 문제인지, 아니면 경제 연착륙을 암시하는 좋은 소식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경제가 회복을 유지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인플레이션이 다시 올라가지 않도록 지켜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습니다.

바비 뿐 아니라 다른 문화 콘텐츠의 흥행도 미국 물가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테일러 스위프트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테일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제시했습니다.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 번 공연을 하면 지역 경제가 바뀐다는 겁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필라델피아에서 공연을 연 달에는 실제 필라델피아의 소비가 강력하게 뛰어오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은 "스위프트의 콘서트가 열리면서 호텔과 식당의 매출이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분석했습니다.

뉴욕=나수지 특파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