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올 들어서 전기차 가격을 여섯 차례 내리고 두 차례 올리는 등 수시로 가격을 바꾸고 있다. 너무 잦은 가격 변동으로 기존 고객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테슬라는 이같은 변동 가격 정책으로 수요를 조절하면서 다른 전기차 업체들과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테슬라의 독특한 변동 가격 정책이 기준 금리 인상과 전기차 수요 감소로 시험대에 올랐다고 최근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테슬라의 가장 저렴한 전기차인 '모델3'의 가격은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소비자의 신차 평균 구매가를 추종해왔다. 첫 출시됐던 2017년엔 3만4944달러로 당시 신차 평균 구매가 3만5000달러와 거의 비슷했다. 이후 5년 동안 미국 내 자동차 값이 크게 오르면서 지난 1월초 모델3 가격은 4만6990달러에서 시작하며 미국 신차 평균 구매가 4만7681달러보다 700달러 가량 쌌다.

테슬라 엔트리 모델의 가격을 미국 신차 평균 구매가와 비슷하게 책정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변동 가격 전략은 매년 초 모델별 가격을 책정한 뒤 이를 유지해온 미국 자동차 업계의 200년 가격 결정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이렇게 수시로 가격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테슬라가 차량 판매를 전담하는 딜러사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차량을 판매하는 판매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테슬라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Y'마저 미국 신차 평균 구매가 밑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자료 :블룸버그
테슬라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델Y'마저 미국 신차 평균 구매가 밑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자료 :블룸버그
하지만 올 들어서 테슬라는 미국 신차 평균 판매가보다 더 싸게 전기차 가격을 책정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모델3의 가격은 이달 들어 미국 신차 평균보다 7500달러나 싸졌다. 모델 3보다 비싼 모델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의 가격 하락 폭은 더 컸다. 지난해 말 신차 평균 가격보다 2만달러 비쌌던 모델Y 가격은 뚝뚝 떨어지며 이달엔 신차 평균보다 270달러 밑으로 하락했다. 신차 평균 구매가격보다 더 싸진 테슬라의 전기차에 사람들의 수요는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더 공격적인 가격 인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테슬라가 소수 모델에 집중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일체형 차량 구조부터 단순한 배터리까지 제조 혁신을 통해 회사의 비용 절감을 이끌어왔다. 이를 통해 회사는 높은 마진률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난 3년 동안 약 100억달러의 부채를 상환했다. 지난해 말 기준 테슬라는 222억달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는 데 비해 부채는 21억달러에 불과하다.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가격 경쟁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재고가 지난 1분기 말 9만2000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자료 : 블룸버그
테슬라의 전기차 재고가 지난 1분기 말 9만2000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자료 : 블룸버그
가격 인하의 이면에는 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의도가 드러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4분기 동안 생산량이 배송량을 넘어서면서 올 1분기 말 기준 차량 재고는 9만2000대인 것으로 추산된다. 토니 사코나기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가격 상승기에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배송을 늘렸던 테슬라가 수요를 늘리기 위해 가격을 내리면서 생산량이 인도량을 앞지르는 국면으로 분명히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머스크 CEO도 앞서 "수요 감소에 따라 선택에 직면했다"며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가격을 인하해) 최대한 빨리 성장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격을 수시로 바꾸는 머스크의 변동 가격 전략은 전기차 업계에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테슬라를 추격하고 있는 포드와 볼보 등은 전기차 가격 책정을 본사에서 집중적으로 제어하기 시작했다. 바뀌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가격을 바꾸며 수요 진작과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전기차 가격을 빠르게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쟁 시장에서 일부 브랜드는 수익성보다는 성장 확대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