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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사이버보안 차르
차르는 1547년 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대관식에서 사용하면서 공식 칭호로 확립됐다. 절대권력의 상징인 차르의 시대는 이후 370년간 이어지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차르가 부활한 곳은 뜻밖에도 자유민주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이다.
미국은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위기를 돌파할 백악관 조정자에 차르라는 용어를 소환했다. 1차 세계대전 때 군수산업을 지휘한 버나드 바루크의 산업 차르를 시작으로 마약 차르, 에너지 차르가 나왔다. 법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으로 부처에 흩어진 기능을 묶는 조정자라는 의미다.
2020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때도 차르가 등장했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 대응을 맡긴 제프 자이언츠의 공식 직함은 대응 조정관이지만, 언론은 그를 코로나 차르라고 불렀다. 백신 접종과 검사, 방역 등 각 부처 업무를 조율하며 속전속결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임명한 하워드 슈미트 백악관 조정관도 사이버 차르로 불렸다.
한국에도 ‘사이버보안 차르’가 등장할 전망이다. 부처별로 흩어진 보안 기능을 통합·조정하자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강력한 사이버보안 차르 기구 구성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 순방단의 개인정보가 외부에 노출된 사고까지 벌어진 터다.
국가 기반시설을 겨냥한 해킹 위협에 맞서는 강력한 리더십은 필요하다. 관료주의에 막혀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보조차 왜 지키지 못했는지 보안 실패의 원인부터 규명해야 한다. 차르를 세우기 전에 보안의 기본부터 세울 일이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