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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냉장고의 소중함
18세기 중반 초기 형태의 기계식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식품을 장기간 보관하는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07년 뉴욕시 조사에서 상위 10%인 연 소득 800달러 이상 가구의 81%가 ‘냉장고’를 보유했다지만 그때까지도 냉장고는 그저 큰 통에 얼음을 넣은 것에 불과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빨리 보급된 가전제품은 냉장고다. 미국에서 냉장고 보급률은 1940년 44%에서 1960년 98%로 뛰었다. 세탁기 보급률이 2025년에도 85%에 불과하고, 오븐 보급률이 2009년에야 100%에 도달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보급 속도다. 한국에서도 1965년 금성사가 첫 국산 제품인 눈표냉장고(GR-120)를 선보인 지 20여 년 만인 1986년 보급률이 95%로 높아졌다.
냉장고가 인류 삶에 기여한 것은 식품 보존 기간을 늘린 것에 그치지 않았다. 냉장기술 덕에 식료품 가격이 낮아졌고 가격 변동은 작아졌다. 식재료도 장거리 수출입 품목이 됐다. 냉장고 덕에 질 높은 영양을 섭취하면서 서구 사회 평균 신장이 본격적으로 커졌다.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 등 유럽 각지의 슈퍼마켓에서 냉장고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사건이 그제 발생했다. 지난달 프랑스 대형마트의 냉장고가 해킹돼 온도가 50도로 올라가 큰 피해를 본 것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해커들은 냉동·냉장 시스템을 원격으로 조작한 뒤 성에 제거 모드로 전환해 내부 온도를 높이는 방식을 썼다. 왜 이런 해킹이 일어났는지, 배후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해킹 테러는 그 위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냉장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도 되고 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