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韓기업 노리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정공법이 답이다
한국 기업을 겨냥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부쩍 거세지고 있다. 싱가포르계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지난달 오리온 이사회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오너 일가 보수체계 개편과 주주환원 확대, 당시 진행 중이던 인수전 철수 등 다섯 가지를 요구하며 답변 시한까지 못 박았다. FCP는 삼성그룹 보안 계열사 에스원도 정조준했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데 이어, 삼성 계열사들을 향해 에스원 지분 20.6% 전량을 시가보다 45% 비싸게 사겠다고 제안했다. 에스원은 45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보유 자사주 전량 소각을 결정했다.

영국계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 압박에 나섰다. LG화학이 지난해 11월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유동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팰리서는 추가 지분 매각과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며 올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제기했다. 주주제안은 표 대결에서 부결됐지만, 회사는 기존 계획에 따라 지분 유동화와 비핵심 자산 정리를 추진 중이다. 새로운 선수들도 가세하고 있다. ‘월가의 암살자’로 불리는 공매도 투자자 파미 콰디르는 한국 기업에 투자할 행동주의 펀드를 새로 꾸리고 서울에 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행동주의 펀드는 최근 그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올해 상반기 행동주의 캠페인이 20% 넘게 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일본에서는 50% 넘게 급증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 턴어라운드에 특화한 알바레즈앤마살(A&M)의 ‘행동주의 조기경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5월 유럽의 행동주의 캠페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늘었다. 요구는 한층 과감하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이사회 자리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던 수준을 넘어 이제는 사업부를 떼어 팔라거나 회사를 통째로 매각하라고 압박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사냥터다. A&M은 미국 다음으로 행동주의자들이 주목하는 다섯 나라로 일본, 캐나다, 영국, 호주와 함께 한국을 꼽았다. 오랜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기업가치 제고 여지가 큰 데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집중투표제 확대, 자사주 소각 원칙 등 소수주주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체질 개선과 가치 제고를 요구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투자 수익이다. 최근 상장기업의 주식을 매집한 행동주의 펀드의 행태는 “부드럽게 말하되 큰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말과 다르지 않다. 행동주의 펀드는 먼저 회사 경영진과 비공개로 접촉해 조용히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주주들을 끌어모아 공개 서한, 지분 매수, 주주 제안, 경영진 소송 등 몽둥이를 꺼낸다. 겉으로는 잠잠해 보여도 이미 물밑에서 압박받는 기업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오기 전에, 스스로 행동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찾는 것은 단순히 주가가 싼 기업이 아니다. 충분히 더 나아질 수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기업이 타깃이다. 따라서 경영진이 스스로 회사가 놓치고 있는 가치를 찾아내 바로잡는 것, 그것이 곧 행동주의 펀드에 맞서는 가장 근본적인 대응이다. 명확한 자본 배분 원칙 하에 무리한 확장을 멈추고, 비핵심 자산을 정리해 투입 자본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일.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체질을 바꿀 때 쓰는 처방과 다르지 않다. 경영진이 먼저 움직이면 그 가치는 고스란히 회사와 주주의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