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마약·위폐·코인 해킹…범죄 국가의 악성 진화
탈북 외교관인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김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일춘 전 북한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다. 류 전 대사가 쓴 책에 그가 북에서 처가살이했을 때 장인과 김정일 간 일화 한 토막이 있다. 2005년 9월, 장인은 수뇌부와 직통으로 연결된 전화를 받고 사색이 됐다. 김정일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내가 돈을 분산시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안 하고 뭐 했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는 내용이다.

유명한 BDA 2500만달러 동결 사건이다. 미국이 이 돈을 묶은 것은 BDA가 북한의 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유통과 세탁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잡아서다. ‘슈퍼노트’로 불린 위조지폐는 미국 정부가 달러를 인쇄할 때 생기는 미세한 잉크 번짐마저 개선한 ‘진짜보다 더 완벽한 가짜’였다. 스위스에서 몰래 들여온 최고급 요판 인쇄기에 면과 마가 혼합된 특수용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광학변색잉크,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까지 일치시켜 감별기까지 통과할 정도였다. 미국은 결국 두 번이나 화폐 도안을 바꿔야 했다.

김씨 일가의 불법 외화벌이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교 행낭의 검색 면제 특권을 악용해 외교관을 통해 돈이 될 만한 것은 죄다 밀수에 동원했다. 담배, 술, 금괴는 물론이고 상아, 코뿔소 뿔,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협동농장에 양귀비 의무 재배량을 할당하고, 화학 공장에서는 순도 99% 필로폰을 제조했다. ‘봉수호’라는 북한 화물선이 125㎏의 헤로인을 밀반입하려다가 호주 특수부대에 적발된 일도 있었다.

북한의 국가 범죄 사업은 마약, 위폐에서 이제 코인 해킹으로 진화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를 상대로 한 63억달러 규모 코인 탈취 사건은 월가 한 투자은행의 하룻밤 사이 파국을 그린 영화 ‘마진콜’을 연상시킨다. 영화처럼 밤새 소집된 임원들이 돈이 빠져나가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단 20분 만에 8조원어치의 암호화폐를 털어갔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금전 목적 해킹 능력은 단연 세계 1위다. 김정은의 특명에 따라 해커를 양성·선발할 때 당성보다 철저히 해킹 실력으로만 뽑는다고 한다. 자식이 최정예 해커 전사가 되면 지방에 사는 부모는 평양의 고급 아파트로 이주하고, 해커에게는 유학 특전이 주어진다. 아랍에미리트와 두바이 등에서 암약하는 해커들은 또래의 북한 청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을 누린다.

혹자는 북한의 국가적 범죄를 ‘내재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미국의 극심한 제재 속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큰 착각이다. 북한이 불법 외화벌이에 나서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은 미국이나 유엔의 제재가 없을 때다. 김일성은 경제 실정을 벌충하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자활’ 지시를 내렸다. 북한은 공산권 국가 최초로 지급불능(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나라다. 1974년 스웨덴 볼보자동차 1000대를 수입해 놓고는 52년째 대금을 갚지 않아 지금도 스웨덴 정부는 북한에 매년 두 차례 독촉장을 보내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따르면 북한 핵·미사일, 무기 부품 구입 비용의 30~40%는 해킹 수입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용처는 김씨 일가의 사치품 및 통치 하사품 구입이다. 인민이 끼니를 걱정하는 곳에서 전체 해외 수입의 20% 정도가 사치품이라고 한다. 그 비자금을 ‘혁명자금’이라고 포장하고, 이를 관리하는 노동당 부서의 최고 책임자는 김정은의 심복 중 심복이다.

바이낸스 사건이 터지기 전날 김정은은 드론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평화는 힘으로만 담보된다”고 했다. 그 힘을 키우는 데 우리가 보태준 것도 적지 않다. 노동당 39호실 고위직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이정호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제조 시설은 2000년대 초 김정일이 한국 정부의 지원금(대북송금)을 받아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완성한 것”이다. 북한 해킹 대책의 출발점은 범죄 집단으로서의 북한을 다시금 직시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