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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칼럼] AI통제론이 불러낸 반핵 운동의 위선
"소련이 응하지 않는다면
서방만이라도 핵폐기 하라"
버트런드 러셀의 위험한 반핵 노선
미·중 AI전쟁시대
AI통제론도 유사한 비대칭성 우려
우리의 당면 과제는 경쟁력 확보
윤성민 칼럼니스트
서방만이라도 핵폐기 하라"
버트런드 러셀의 위험한 반핵 노선
미·중 AI전쟁시대
AI통제론도 유사한 비대칭성 우려
우리의 당면 과제는 경쟁력 확보
윤성민 칼럼니스트
2차 대전 후 반핵 운동의 불을 지핀 이도 러셀이었다. 당시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을 때 러셀은 소련의 핵 개발 계획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미국이 먼저 소련을 쳐야 한다는 ‘예방 전쟁론’의 주창자였다. 그의 주장은 1949년 소련의 핵 개발과 1950년대 초 미·소 양국의 수소폭탄 개발로 핵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급변하게 된다. 인류의 전면적 핵전쟁을 막기 위해서 소련이 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국 등 서방만이라도 일방적 핵 폐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 대목이다. “만약 서방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해 소련이 전 세계를 공산화하겠다는 위협이 현실화하면 어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러셀이 답했다. “만약 최후의 선택지가 인류의 전멸(전면 핵전쟁)과 전 세계의 공산주의 굴종 두 가지뿐이라면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공산주의를 택할 것이다.” 이후 러셀의 반핵 노선 상징어가 된 표현이 ‘Better Red Than Dead’다.
러셀은 뼛속까지 공리주의자였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절하느니 공산 치하라도 살아남아 200년, 300년 뒤를 도모하는 것이 낫다는 게 공리주의자로서 철학적 해답이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현실 세계의 작동원리에 대해선 무지했거나 애써 외면한 인물이었다. 핵억지력이 어떻게 힘의 균형을 이루는지에 관한 이해가 없었다. 서방의 선의는 소련엔 유약함의 신호일 뿐이라고 말한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러셀보다 훨씬 더 현실을 잘 꿰뚫어봤다. 공산 치하에 살아본 적이 없는 러셀의 공산주의 수용 가능성 발언을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사람 역시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 굴라크를 체험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었다.
러셀의 반핵 논리 최대 맹점은 ‘비대칭성’이다. 그는 서방과 서방 지도자만 타깃으로 삼았을 뿐 소련 등 공산 진영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오히려 관대했다. 쿠바 위기 때도 옛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에게는 우호적으로 대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는 침묵하면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만 ‘미치광이’라고 맹비난했다. 소련의 기관지는 러셀의 발언을 1면 톱으로 싣기도 했다. 러셀의 반핵 운동 여파로 서방 국가들이 분열의 소모전을 치르는 사이 소련은 체제 경쟁의 시간을 벌었다.
현재 대두되는 인공지능(AI) 통제론도 러셀류의 반핵 운동 전개 양상과 닮은 점이 많다. AI 통제론은 서방의 AI 연구자와 학자, 기업인들에게서만 제기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강력한 AI 개발을 6개월간 즉각 멈추자는 서명 운동부터 “초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니 비밀 데이터센터를 폭격해서라도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극단론까지 있다. 미·소 냉전 시대 소련 내에서 반핵 운동을 찾아볼 수 없듯이 지금 미·중 AI 전쟁에서도 중국에서 AI 통제론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AI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AI로 인한 인류 멸종이라는 지구적 관점이 아니라 자유주의 사상의 침투를 막는 체제 안정화의 목적일 뿐이다.
중국은 상업적 목적 외에 AI를 통해 크게 세 가지 정치·군사적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군민 융합, 곧 민간 AI 기술을 궁극적으로 군으로 결집해 미국을 능가하는 AI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둘째 전국적 보안 감시망 구축이다. 6억 대 이상 깔린 CCTV와 AI 기술을 결합해 얼굴은 물론 걸음걸이만으로도 대상을 식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AI 기술력을 통한 인지전의 확산이다. 중국형 모델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보급될수록 인권 탄압, 시진핑 독재, 대만 점령 등에 대해 중국이 원하는 대로 가치관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6개월이라도 AI 개발을 늦추는 것은 적전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격이 될 것이다. 핵무기처럼 AI 통제 또한 그 비대칭성 때문에 현실화하긴 불가능하다. AI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는 계속 고안돼야 하겠지만, 아직 글로벌 빅테크에 대적할 만한 독자적 AI 주권을 확립하지 못한 우리는 묵묵히 경쟁력 향상에 전력을 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