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데스크 칼럼] '치매 백신' 개발국의 조건
이태호 바이오헬스부장
NIH는 지난해 공개한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예방 원리를 규명하는 후속 연구 지원에 들어갔다. 새로운 치료 가능성 발견부터 검증, 신약 개발까지 뒷받침하는 미 공공연구 지원 체계의 저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신약 씨앗' 심는 공공연구
정부 기관의 기초연구 지원은 질병의 원리를 밝히고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투자다. 당장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국가 신약 개발 경쟁력의 토대를 제공한다.2001년 표적항암제 시대를 연 ‘글리벡’ 개발이 대표적 사례다. 글리벡의 산파 역할을 한 NIH는 당시 백혈병의 발병 원리를 밝히는 기초연구와 오리건보건과학대 연구진의 후보물질 검증을 지원했다. 이후 글리벡은 2015년 한때 연매출 47억달러(약 6조원)를 올린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했다.
NIH의 역할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빛났다.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는 항원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바이오벤처기업 모더나와 백신을 공동 개발했다. 당시 지원은 모더나를 세계적인 백신 기업으로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더나는 올해 8월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치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공공연구 지원을 줄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지난해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NIH 예산을 영구적으로 10% 줄이는 가상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외부 비임상 연구 지원 축소의 영향만으로도 삭감 후 21~30년 동안 출시하는 신약이 20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미 의원들은 “미국이 의료 혁신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은 NIH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NIH의 올해 예산은 475억달러(약 65조원)다. 한국의 5개 부처 보건의료 R&D 예산의 30배에 달한다.
긴 호흡으로 지원 늘려야
신약 개발의 토양을 다지는 공공연구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의료 데이터 축적과 인공지능(AI) 발전으로 기존 치료제의 뜻밖의 효과를 발견하거나 발병 원리를 규명한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스탠퍼드대의 대상포진 백신 연구 성과도 웨일스 주민 28만여 명의 장기 의료 데이터 덕분에 가능했다.AI 분석을 돕기 위한 데이터 표준화 작업도 공공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다. NIH는 이 같은 필요성을 인식하고 2022년 ‘브리지2AI’ 사업을 시작했다. AI 분석에 적합한 의료·생물학 데이터를 구축하고 수집·활용 기준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연구 인력 교육도 지원한다. 올해는 데이터를 실제 연구에 활용하는 2단계 추진을 승인했다.
한국도 바이오 강국으로 성장하려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공공연구 투자에 더욱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기술수출 실적만으로 성과를 재단해선 장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많은 신약의 열매를 거두려면 토양부터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