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보석함 속에 갇혀 있는 K컬처
지난달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무감서기’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감서기는 서울 지역 굿의 특징으로, 굿을 의뢰한 사람이 무녀 옷을 입고 춤판으로 뛰어들어 복을 비는 의식을 말한다. 무용수들은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통의상을 입고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한(恨)과 신명을 펼쳐 보였다.

미신으로 치부되던 무속신앙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한 무대였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인기로 무당에 대한 친근함도 생겨난 터다. 루미, 미라, 조이 3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가 악귀를 물리치는 무당의 후예로 나온다.

전통문화 공연 '전석 매진'

서울시무용단은 작년에도 ‘미메시스’를 새로 선보여 호평받았다. 재현을 의미하는 미메시스는 태평무 소고춤 무당춤 승무 살풀이 교방무 한량무 장검무 등 여덟 가지 한국 전통무용을 소재로 삼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이수자인 윤혜정 단장이 예술감독과 안무를 맡았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개막 2주 전에 나흘간의 공연 전석이 매진됐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 워싱턴 워너시어터에서 공연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초 1층 객석만 받을 계획이었지만 1900여 명이 몰리면서 2층까지 열게 됐다.

신작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종묘제례악 의식무를 오늘날에 맞게 되살린 ‘일무’는 한국 국공립 예술단체 작품 최초로 ‘무용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베시 어워드(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를 받았다. 2022년 초연 이후 단 한 차례 예외도 없이 매진됐다.

국립무용단이 2015년 내놓은 ‘향연’은 또 어떤가.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흐름을 따라 궁중무용부터 종교무용, 민속춤을 아우르는 공연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담담하기도 하고, 정갈하기도 하고, 경건하기도 하고, 흥겹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우리 전통문화를 만끽할 수 있다. 지난 7월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회식 때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외 귀빈 앞에서 선보인 축하 공연 가운데 하나도 향연의 일부를 다시 꾸민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중화 지원해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제작한 명품 공연의 문제는 딱 하나다. 접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표를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용수 수십 명을 동원해야 하다 보니 예산 문제가 생기고 공연장을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다. 확실한 공연 수요를 발견했지만 대중화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전통문화를 즐기고 만방에 알릴 기회를 무용단체에만 맡겨놔서는 안 된다. 장기 공연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해외 진출 토대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줘야 한다. 지금은 금은보화 같은 작품들이 보석함에만 갇혀 있는 꼴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K컬처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며 “우리 문화를 명실상부 미래의 핵심 성장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비상한 각오와 사명감으로 K컬처 문화강국을 향한 큰길을 열어가자”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전통문화를 되살린 무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