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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년을 견딘 한지, 무한 가능성 품고 세계의 유산이 되다
박찬우 경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세계적인 디자인 축제인 파리디자인 위크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경북의 풍부한 전통문화를 세계화하고 그 산업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이번 전시는 경북의 힘으로 주요 서구 국가의 수교 기념행사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오텔 드 라 마린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18세기 프랑스 문화유산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개막식에 참석한 마리 라방디에 프랑스 국가유산청장은 축사를 통해, 역사적인 공간에서 현대적인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이곳에 들어선 한지 작품은 종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넘어 조명과 오브제, 병풍, 파티션, 선반 등 현대적인 디자인 오브제의 모습으로 관람객과 만났다. 문경과 안동의 한지가 프랑스 디자이너와 한국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프랑스 디자이너 6명과 한국 작가 11명이 함께 만든 17점의 작품은, 한지가 전통의 소재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공간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소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프랑스 디자이너들에게 한지는 결코 익숙한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장인들의 전통 기술과 만나면서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확장되는 마법 같은 결과물을 빚어내며 전시장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19~20일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맞아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크게 늘면서, 주최 측은 당초 9월 28일까지 예정됐던 전시를 이달 4일까지 연장했다.
이 뜨거운 열기는 현지 주요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간지 ‘르 몽드(Le Monde)’를 비롯해 프랑스의 디자인 전문매체 ‘메종 아 파르(Maison à part)’등도 이번 전시를 주목했다.
지난달 8일에는 김혜경 여사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직접 전시장을 찾아 한지 작품을 관람하며 양국 간 문화적 유대를 다졌다. 세계적인 향수 기업 IFF의 조향사 도미틸 미샬롱이 한지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한 향을 제작하는 등, 한지는 시각과 촉각을 넘어 후각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영감의 지평을 넓혔다.
전시장에 선보인 경북 문경 전통 한지는 이미 루브르박물관 문화재 복원에 활용될 만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안동의 한지 역시 생활과 공예 분야로 활용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과거 한지의 가치를 ‘주장하는 단계’에서 이제는 국내외에서 그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는 단계를 거쳐 외국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속에서 가치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한지의 전통성과 무궁무진한 산업적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경북이 이 같은 변화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이번 파리 전시가 더욱 뜻깊은 이유는, 올해 12월 예정된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에서 전폭적인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대표목록 등재는 한지의 제작 기술과 전통 지식이 특정 지역이나 한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국제사회에 공인받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경상북도는 이번 전시를 단발성 행사의 성과로 안주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라는 결실을 기대하는 동시에, 그 이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지 장인의 대를 잇는 기술을 보존하고, 안정적인 한지 생산 기반을 다지며, 전 세계 수많은 작가와 디자이너가 한지를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교류와 협업의 다리를 놓을 것이다.
천 년을 견뎌온 종이가 파리에서 찬란한 미래를 만났다. 이제 경북이 해야 할 일은 그 만남을 일회성 박람회의 화려한 기억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와 산업의 흐름으로 단단히 엮어내는 것이다. 한지가 세계의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나아가 세계인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소재로 자리 잡는 것. 그것이 바로 경상북도가 그려 나가는 한지의 가슴 벅찬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