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에는 몇 년 전부터 ‘신상 카페’들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알려진 ‘7번 국도’를 따라서다. 대구에서 일하던 A씨도 고향 영덕으로 돌아와 최근 단층 폐가를 인수해 카페를 차렸다. A씨는 “귀촌은 했지만 어업이나 농업 관련 일을 할 생각은 없다”며 “영덕군에도 청년 창업이 늘면서 ‘힙한’ 식당과 콘셉트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덕의 특산품인 대게 장사는 겨울 한철이지만 카페에는 인근 포항과 경주에서 주말마다 손님이 몰린다”고 귀띔했다.
◇ 농촌 향해도 농사 안 짓는 청년들
‘귀촌’이라고 하면 아직도 트랙터와 비닐하우스, 수산물 시장, 가공업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 귀촌 청년들의 모습은 꽤 다르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촌에서 활동하는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숙박·음식점·카페·문화공간 등을 운영하는 ‘농촌관광’이 38.5%로 가장 많았다. 취미·여가 활동은 35.5%, 소득을 목적으로 한 전문적 농사는 32.0%였다. 농업 외 창업·취업은 17.5%, 농·특산물 가공·판매는 15.5%에 그쳤다. 귀촌 청년들이 농·어촌을 향유하는 방식이 반드시 농업과 어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하지만 정부의 귀촌 대상자 지원은 여전히 농어업 분야에 집중돼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6년 전체 청년 관련 예산은 2조1035억원이다. 이 가운데 농업 분야 예산이 2조83억원으로 95.5%를 차지한다. 특히 ‘맞춤형 농지 지원’에만 1조8077억원이 배정됐다. 전체 청년 예산의 86.0%다. 반면 비농업 분야 예산은 총 954억원으로 전체의 4.5%에 불과하다. 지방소멸 대응의 초점을 농어업 종사 청년 지원에만 맞추고 있는 셈이다.
지역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농어촌 재생 사업’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지역산업과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전남 해남군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2.1% 늘었다. 전국 평균(20.2%)보다 높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해남 인구는 12.7% 줄었다. 해남 외에도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 가운데 68곳이 이런 ‘역설적 현상’을 보였다. 기술 발달과 정부 지원 등으로 생산성은 개선됐지만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가속화한 것이다.
보고서는 원인으로 ‘가치사슬의 단절’을 지목했다. 고구마를 더 생산하고 전복을 더 길러도 지역에서 생산한 원물이 외부로 출하되는 데 그치면 제조·유통·서비스 등 연관 산업과 소득도 지역 밖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지역과 ‘연결된’ 카페, 청년 불렀다
전문가들은 지역 자원을 연결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농산물·공간·문화·관광 등 지역 자원을 가공·유통·판매·서비스와 결합해 부가가치가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면 청년 유입과 지역 재생을 함께 이끌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남 해남의 ‘피낭시에’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6년 고향으로 U턴한 이 회사 대표는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지던 해남 고구마에 제과 기술을 접목해 ‘고구마빵’을 선보였다. 한 해 100t의 해남 고구마와 10t의 해남 유기농 쌀을 사용했다. 2022년 한 해에만 13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해남읍 원도심 체류 시간이 늘고 주변 상권 이용도 활발해지면서 2026년 현재 피낭시에를 포함해 4곳의 가게가 추가로 들어섰다.
전북 정읍의 ‘샘샘카페’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역농협인 샘골농협과 청년지원센터는 오래된 농협 양곡창고를 감각적인 파머스 디저트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지역 밀 농가 65곳과 계약을 맺고 국산 밀 크루아상 등 디저트를 개발·판매하는 상생 모델도 구축했다. 농산물의 단순 생산·판매를 넘어 제빵·가공을 거쳐 외식 서비스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만든 것이다.
농산물만 지역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버려진 고택과 빈집, 낡은 양조장도 그 자체로 관광상품이 된다. 경북 문경의 로컬기업 ‘리플레이스’는 사람이 떠난 공간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였다. 200년 된 고택과 옛 양조장, 적산가옥 등을 카페와 한옥스테이, 여행안내소로 탈바꿈시키고, 건물에 깃든 역사와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입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리플레이스가 조성한 공간을 찾는 문경지역 방문객은 연간 10만~12만 명에 달하고, 청년 일자리 22개도 생겨났다.
충남 공주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원도심 전체를 하나의 호텔처럼 묶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소개한 ‘마을호텔’은 빈 점포와 유휴공간을 숙박·서점·카페·전시공간 등으로 연결해, 투숙객이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마을 곳곳을 오가도록 설계한 모델이다.
전문가들은 로컬 창업이 성공하려면 개별 사업체 차원을 넘어 지역과의 연결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의 원물과 공간에 외부의 기술·기획력을 결합해 상품·가공·판매·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황재희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집적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자원을 새롭게 결합해 수요와 산업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의 산업적 기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