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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칼럼] 2018년 데자뷔 '트럼프 쇼 외교'
선거용 대북 외교 이벤트 준비
'선 비핵화' 원칙 흔들어선 안 돼
이정호 논설위원
'선 비핵화' 원칙 흔들어선 안 돼
이정호 논설위원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대북 협상의 막전막후다. 전체 700여 쪽 가운데 120쪽에 달하는 분량을 2018년 싱가포르 회담과 이듬해 하노이 회담, 판문점 회동으로 이어진 미·북 정상 간 세 차례 만남에 할애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 준비 과정을 회고하며 이를 ‘엄청난 연극’이자 ‘홍보용 이벤트’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회고록 곳곳에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단계와 검증 절차가 빠진 알맹이 없는 공동성명에도 트럼프는 기꺼이 서명할 준비가 돼 있었다” “트럼프를 움직인 실질적 동기는 한반도 안보나 비핵화가 아니라 언론 보도와 사진 촬영 기회였다”고 적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형 외교 성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는 경제 숨통을 틔우기 위한 대북 제재 완화가 절실했다. 동상이몽으로 출발한 회담이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영변 외의 추가 핵시설까지 폐기해야 한다며 맞섰고 합의는 결렬됐다.
지난해 집권 2기에 들어선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외교판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9일 김정은과의 연내 정상회담 추진 계획을 공식화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행보는 2018년 6월의 데자뷔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닥까지 떨어진 지지율 반등을 꾀하며 미·북 대화를 외교 성과로 포장하려는 계산이 판박이처럼 닮았다.
달라진 건 북한 사정이다. 2018년 당시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인 -4.1% 역성장을 기록했을 만큼 경제난이 심각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은 북·중·러 밀착과 우크라이나전쟁 ‘특수’로 연 3%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전력 고도화까지 이뤄냈다. 8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급이 커진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군축협상을 요구하며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을 한꺼번에 관철하려고 들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나 드러났지만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설득으로 판이 깔린 정치 이벤트였다. 트럼프의 예측 불허 행보와 우리 정부의 아마추어적 대응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한·미 양국 사이에는 ‘북한 선(先) 비핵화’라는 공통의 레드라인이 작동하고 있었다.
2026년 여름 한반도의 불안 변수는 한둘이 아니다. 조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한국은 협상에서 제외된 채 미국은 정치 성과를 챙기고,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와 제재 완화를 동시에 얻는 위험한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더 걱정되는 건 점점 흐려지는 선 비핵화 원칙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선 비핵화가 아니라 ‘선 평화론’으로 대북 접근법을 전환했다고 선언했다.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 개선이 먼저라는 생각은 자칫 미국 외교팀에 한국이 비핵화 원칙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어쩌면 코리아패싱보다 더 경계해야 할 건 우리 정부의 대북 낙관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