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술패권 시대, 인재에 돈을 써라
1946년 10월 22일 새벽, 수천 명의 소련군이 베를린 일대에서 체포 작전을 시작했다. 일명 ‘오소아비아힘 작전’에 따라 소련으로 잡혀간 인원만 2500명. 삐딱한 정치인? 나치 잔당? 그도 아니면 숙청 대상인 자본가들? 아니다. 로켓, 항공우주, 원자력, 전자공학 분야의 과학자였다. 끌려간 그들은 1950년부터 1958년까지 순차적으로 독일로 귀환했다. 그들이 억류기간 뭘 했는지는 소련의 1949년 원자폭탄, 1953년 수소폭탄,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1950~1955년 소련의 연평균 공업 생산량 증가율은 10.8%. 외계인을 납치하고 고문해서 기술을 빼낼 수 없으니 그들로 대신한 건가? 하지만 그때 소련의 폭발적인 성장은 미국을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랬다고 일방적으로 소련만 욕할 수 없다. 원조는 미국의 ‘페이퍼클립 작전’이니까. 그들은 소련보다 1년6개월이나 먼저 움직였고 독일 과학자 1600여 명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나치 부역자도 상당수 있었지만 기록을 폐기한 후 멀쩡한 미국인으로 살게 했다. 친위대 소령이던 폰 브라운은 전국을 돌며 강연하고, 책도 내고, TV 출연까지 했다. 그리고 인공위성부터 시작해 아폴로 11호의 로켓까지 만들어 미국에 보은했다. 미국은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미국 시민으로 흡수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한다. 인재의 중요성을 자각한 미국은 1944년 ‘제대군인 지원법(G.I. Bill)’을 만들었다. 참전군인에게 대학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지급하는 법안인데 223만 명이나 혜택을 받았다. 종전 시점의 미군은 1200만 명, 그중 800만 명이 제대하고 노동시장에 복귀하면 대혼란이 불가피했는데 대학으로 우회하도록 했다. 동시에 능력은 되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을 포기했던 인재를 교육시켜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20년간 펼쳐지는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지금 중국에서 ‘천인계획’은 검색 금지어다. 이미 존재하던 백인계획을 1990년대부터 확대한 것인데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 석학의 애국심에 호소해서 싹 복귀시킨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일하던 기관의 연구를 훔쳐와 똑같은 ‘그림자 실험실’을 중국에 재현하도록 강요하는 불법적 행태를 반복했는데 결국 문제가 되고 만다. 그건 미국 공공과 민간의 예산 및 인프라를 부당하게 훔친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공론화되면서 미국에서 중국 출신 인재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지고, 해고와 불이익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에다 외국인 석학에게도 거액의 연구비를 미끼로 첨단기술을 빼낸 사실이 적발되며 세계적인 비난이 폭발하자 천인계획을 검색 금지어로 지정하고 국내에서 핵심 인재를 양성한다는 만인계획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끝내주게 달콤했던 ‘그 짓’을 정말 멈출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중국의 기술 성장은 미국을 떨게 했다.

금융자본주의의 핵심 요소인 ‘금융’은 계좌에 존재하고 빛의 속도로 이체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펼쳐지고 있는 기술자본주의의 핵심인 ‘과학과 기술’은? 석학과 엔지니어의 머릿속에 존재하니 쉽게 이체가 안 되고, 두뇌만 따로 떼어올 수 없으니 희로애락을 느끼는 몸까지 같이 모셔와야 한다.

며칠 전 국내 명문대 교수가 교수 임용 11년 차인 올해 처음으로 급여가 인상됐다며 밥 한번 사겠다고 했다. 기가 찼다. 미국처럼 군 복무자에게 장학금을 주기는커녕 만만한 대학의 공납금을 16년이나 동결하도록 압박하는 바람에 교수 월급도 줄곧 동결됐던 것이다. 이거 ‘잡은 물고기에 떡밥 안 주기’인가? 귀국하려는 석학도 막아서는 바보짓이었다.

중국 욕할 거 없다. ‘애국심에 호소해서 해외 인재 모셔오기’는 우리가 원조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하면서 해외 한인과학자 18명의 애국심에 호소했지만 동시에 자기보다 더 많은 급여를 책정했다. 그들이 오늘의 기술한국을 만든 거다. 과학기술이 핵심인 기술자본주의 시대, 교수와 석학의 월급을 최소 ‘국회의원’보다는 더 많이 책정해 속속 모셔오고,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미국과 세계를 떨게 만드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