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산불이 왜 한국 투자자에게 문제일까? 프랑스 보르도 인근 지롱드 한 곳에서만 4만2000헥타르, 서울 면적의 3분의 2가 잿더미가 됐고,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약 33만 명이 대피했다. 현장에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자칫 ‘매우 안타깝다, 유감이다’라는 구호의 손길로 끝날 수 있는 이슈다.
그러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를 투자 대상의 매출과 비용 증감으로 따지는 투자자의 눈으로 이 산불을 들여다보면, ‘내 포트폴리오를 점검할 만한 섬뜩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해당 지역의 산물을 원재료로 쓰는 기업의 매출원가 급증은 차치하더라도, 산불과 같은 기후재해는 보험손실을 통해 기업의 비용으로 빠르게 현실화된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전 세계 자연재해 보험손실은 2025년까지 6년 연속 1000억 달러를 넘었다. 2025년에는 1070억 달러로 2024년 약 1400억 달러보다 감소했지만, 이는 위험이 줄어든 결과라기보다 미국에 대형 허리케인이 상륙하지 않은 ‘운’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스위스리의 진단이다.
정작 주목할 건 산불이다. 산불은 보험손실이 연 12%씩 늘어 가장 빠르게 커지는 위험으로 꼽다. 특히 2025년 초 로스앤젤레스 산불(팰리세이즈·이턴)은 40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산불 손실을 남겼다. 산불·홍수·대류성 폭풍 같은 ‘2차 위험’이 2025년 전체 보험손실의 92%를 차지한 것도 상징적이다. 가장 빠르게 더워지는 대륙인 유럽은 2015~2024년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약 2.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상승폭은 1.2℃였다. 이번 산불까지 더하면 스위스리가 2026년 손실을 추세선상 1480억 달러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후재해, 재보험 타고 국내 손보사로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의 손실이 어떻게 국내 손보사로 흘러들까? 답은 ‘재보험’이다. 손해보험사는 태풍·홍수 같은 대형 재해 위험을 혼자 떠안지 않고 상당 부분을 글로벌 재보험시장에 넘긴다(출재·出再). 여기서 핵심은 이러한 출재가 자동차·장기보험이 아니라 자연재해가 몰린 일반손해보험(재물·기술·해상 등)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자동차·장기보험은 보유율이 90%를 웃돌아 재보험 의존도가 낮은 반면, 일반보험은 금융당국이 개별계약 최소보유비율을 10%로 규제할 만큼, 뒤집어 보면 최대 90%까지 출재가 가능한 구조다. 실제로 국내 손보사가 해외 재보험에 낸 보험료는 2022년 3조1000억 원에서 2024년 3조3700억 원으로 늘었고, 최근 3년 누적으로만 약 9조6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유일의 전업재보험사 코리안리의 시장점유율이 2022년 68.9%에서 2024년 56.5%로 떨어진 것도 해외 재보험사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예컨대 유럽 산불로 글로벌 재보험 요율이 오르면, 그 청구서는 일반보험 비중이 큰 국내 손보사에 집중적으로 날아든다. 자동차 보험에서 사고가 늘어나면 보험료 인상 압력이 커지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이 청구서는 곧 손익계산서 문제다.
통상 매년 1월이면 이뤄지는 재보험 갱신에 이번 유럽 산불이 반영되면 2027년 출재보험료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출재보험료가 오르면 일반보험 마진이 눌리므로, 재보험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설계·분산해 요율 상승의 영향을 덜 받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손익이 갈릴 수 있다.
국내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 집중호우·폭염이 일상화되자 손해보험협회와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지난 7월 7일 기상청 데이터와 보험 정보를 결합한 ‘기후보험 종합 포털’ 구축 협약을 맺었다. 핵심은 지수형 보험, 즉 파라메트릭 보험의 조건 충족 여부를 자동 판정해 신속히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있다.
‘폭염이 사흘 이상 이어지면 자동 지급’하는 식으로 미리 정한 기상지표가 충족되면 별도의 손해사정 절차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물리적 리스크를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보험 상품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국내에도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 리스크 관리가 자본효율성 가른다
그런데 재보험 구조는 손익만이 아니라 ‘자본’도 가른다. 여기서 진짜 투자 포인트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 말 보험사가 자체 개발한 모형으로지급여력비율(K-ICS)의 요구자본을 산출할 수 있게 하는 ‘내부모형 승인기준’을 처음 마련했고, 올 연말부터 본격 적용된다.
K-ICS는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이른바 ‘보험판 BIS비율(자기자본비율)’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보험사가 감독당국의 표준모형을 일괄 적용해 자연재해 위험계수도 개별 회사의 위험 관리 특성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받았다. 그러나 내부모형을 쓰면 자사의 재보험 구조와 위험 분산 정도를 정밀하게 반영해 요구자본을 낮출 수 있고, 요구자본이 줄면 K-ICS가 올라 배당과 신규 투자 여력이 함께 넓어진다.
흥미롭게도 내부모형이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영역중 하나가 바로 자연재해 같은 대재해 위험이다. 유럽의 지급여력제도 ‘솔벤시Ⅱ’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결국 잘 짠 재보험이 손익 측면에서는 비용 부담을 낮추고 자본 측면에서는 요구자본을 줄이는 지렛대가 양쪽에서 작동하는 셈이다.
여기서 투자자가 주목할 진짜 포인트가 나온다. 내부모형은 스위치를 켜듯 도입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수십 년치 사고·손해 데이터, 그 데이터를 정교한 모형으로 구현할 계리 역량, 재해 위험을 촘촘히 나눠 담는 재보험 프로그램 설계 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승인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역량은 하루아침에 사들이거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먼저 갖춘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른바 ‘해자(moat)’다.
앞서 본 손익과 자본의 두 지렛대가 한곳으로 모이는 지점도 여기다. 일반보험을 두껍게 안고도 재해 위험을 정교하게 분산해 온 회사, 그리고 그 위험을 내부모형으로 자본관리까지 연결할 수 있는 회사가 비용과 자본 양쪽에서 격차를 벌린다.
결국 기후 물리적 리스크의 시대에 손보사를 가르는 잣대는 ‘누가 위험을 더 정교하게 측정하고, 더 잘 분산하는가’다. 이 지점이 손해보험사의 비용을 넘어 자본효율성, 곧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주환원 여력까지 가르는 핵심 포인트다.
Anti-ESG 바람이 거세도, 기후 물리적 리스크는 조용히 재무제표와 자본비율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산불이 앞당긴 것은 한 계절의 재난이 아니라, 재보험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비용과 자본 양쪽에서 벌어지는 손해보험 산업의 ‘옥석 가리기’다. 기후위험을 더 정교하게 특정하고 그 위험을 더 잘 분산하는 회사가 앞서는 시대다. 그 격차가 굳어지기 전에 투자자가 먼저 들여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