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글로벌 리더
모린 베레스포드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총괄이사
"스튜어드십 코드 핵심은 실질적 변화 유도"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 10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상법 개정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일련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에 이은 조치로 기관투자자의 관여 주주활동(engagement)과 단계적 대응(escalation), 협력적 주주활동(collaborative engagement)을 강화하는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는 시점이다.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글로벌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조이자 기업지배구조 규범의 표준을 제시해 왔다. FRC에서 기업 지배구조 및 스튜어드십을 총괄하는 모린 베레스포드 총괄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공적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자율 규준 안착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 과제를 짚어봤다.

-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어떤 기관이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FRC는 영국의 회계·감사·기업 지배구조 표준을 제정하고 이를 감독하는 독립 감독 기구다. 기업 공시의 투명성과 회계감사 품질을 관리해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세계 최초로 제정한 지배구조 지침인 기업지배구조 코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한 기관이기도 하다. 저는 FRC에서 기업 지배구조 및 스튜어드십 총괄이사를 맡고 있다. 영국의 기업지배구조 코드, 스튜어드십 코드, 그리고 상장사가 아닌 대형 비상장기업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 규범인 웨이츠 지배구조 원칙(Wates Principles)까지 총 3개 코드를 총괄 담당하고 있다.”

-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 성과는 어떠한가.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를 위한 법적 강제성이 없는 자율 규제이지만, 매우 강력한 시장 구속력을 갖는다. 현재 총 운용자산(AUM) 규모 약 57조3000억 파운드(약 10경 원)에 달하는 271개 기관투자자가 서명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FRC 평가팀은 매년 모든 스튜어드십 보고서를 직접 검토하여 승인된 서명기관 목록을 공개한다. 이 목록에서 탈락할 경우 자산배분 기관과의 위탁운용 계약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자발적이면서도 매우 엄격하게 코드를 준수한다.”

- 10년 만에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개정됐다.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장 먼저 지배구조 프레임워크 요소 중 무엇을 ‘법률(legislation)’로 규정할지, 무엇을 코드에 담을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법률은 ‘이것을 해라, 저것을 보고해라’ 식의 정량적·체크리스트형 규제가 되기 쉽다. 법은 전체적인 프레임워크와 파라미터를 설정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영국의 경우 수탁자 책임은 코드 안에 두지 않고 코드 밖에서 연금감독청이나 금융감독청(FCA)의 법률 영역으로 분리 운용한다. 반면 코드는 FRC가 담당하는 영역으로, 법적 강제성보다는 유연성을 바탕으로 기업과 투자자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한다.”

- FRC가 강조하는 ‘원칙 기반(principles-based)’ 접근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단 하나의 정답을 정해두지 않고 ‘달성해야 할 목표(원칙)’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원칙(principle)은 ‘기업과 투자자가 무엇을 이뤄내야 하는가’를 정의하며, 보고(reporting)는 ‘그 원칙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용했는가’를 설명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원칙 적용 방식을 깊이 고민하게 한다. 따라서 모든 참가자의 답변이 동일하거나 단편적일 수 없으며, 체크리스트 작성에서 벗어나 정량·정성적인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라면 기업과 관여 활동을 했는지, 몇 번이나 만났고 어떤 이슈를 다뤘으며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핵심은 ‘무엇을 했는가(action), 어떻게 했는가(process), 그리고 성과(outcome)는 무엇인가’이며, 그 바탕이 되는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관여’다.”

- 투자자가 기업가치에 실제로 미친 영향은 어떻게 증명하나. 장단기적으로 다를 것 같다.

“기업은 단순 활동(activity)을 넘어 ‘실질 성과(outcome)’를 증명해야 한다. 성과란 기업의 정책 및 전략 변화, 이사회 내 여성 이사 선임, 사외이사 교체 등 실질적인 거버넌스 개선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장기 과제의 대응(milestone)이다. 다만 탈탄소화나 기후변화 대응 같은 장기 과제는 성과 창출까지 수년이 소요된다. 따라서 매년 완성된 성과를 낼 수는 없으므로, 그 과정에서 달성한 단기 목표나 이정표(milestone)를 단계별로 증명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생태계 접근이 필요하다. 투자자는 단일 기업 관여에 그치지 않고, 자산보유자-자산운용사-의결권 자문사-정책 입안자로 이어지는 투자 가치사슬 전체와 시스템 리스크(지정학적 리스크 등)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우선순위와 명확한 목표,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들을 기업과 어떻게 소통하고, 자산배분 전략 및 운용사 위임 기준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 한다. 세부 사례는 작년에 발간한 검토 보고서(Review Report)를 참고할 수 있다.”

- 현재 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관여 활동의 활성화를 의도하고 있다. 어떻게 실효성을 높일 수 있나.

“가장 먼저 할 일은 주주활동의 ‘일상화(normalization)’다. 관여 활동은 단계별로 진행되어야 한다. 먼저 관여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모든 기업에 관여할 수는 없으므로 우선순위를 정해 월별·분기별로 기업과 주기적으로 꾸준히 대화하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평소 대화 채널이 열려 있어야 이슈 발생 시 부드러운 해결이 가능하다. 관여가 일상화되면 투자자는 기업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기업 역시 투자자와 대화하는 데 익숙해진다.

단계적 대응(escalation)을 할 때는 갑자기 반대 표결을 행사하거나 이사진을 찾아가기보다 사전 통보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담당자와 대화하고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뜻을 사전에 알린다. 이후 이사진 면담 요청이나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연대를 추진하고, 그래도 미진할 경우 주주총회 안건 제안 및 이사·의장 선임안에 반대 표결권을 행사한다. 최종 단계는 자금을 회수(매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단계별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하며, 탈탄소화처럼 성과가 나오기까지 3~5년 이상 걸리는 이슈는 지속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다. 관여를 일상화하고, 의도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핵심은 실질적 변화 유도"
- ‘원칙 준수 또는 사유 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이 한국에서는 형식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FRC는 이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타당한 사유가 있는 설명(good explaination)’ 역시 준수(comply)만큼이나 훌륭한 이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즉 왜 준수하지 않는지, 원칙 대신 어떤 대안을 마련했는지, 이행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드상 이사회 의장 임기는 9년이 권장되지만, 대형 인수합병(M&A)이나 기업 위기 극복을 위해 10~11년 연임이 필요한 경우 그 사유를 명확히 설명한다면 이는 매우 훌륭한 공시로 인정받는다. FRC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제공과 함께 팟캐스트, 웨비나, 우수 사례 홍보를 통해 적극적인 ‘설명 문화’를 독려한다.”

- 일본과 같은 ‘우수 기업 표창 및 지명 압박(name and shame)’ 방식과 영국의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영국 FRC는 절대로 비난이나 지명 압박(shame)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우수 사례(good practice) 공유에 집중한다. 매년 약 100개 기업 샘플을 대상으로 연례 검토 보고서를 발간하며, 조직문화·주주 관여·이사회 평가 등에서 우수한 공시를 한 기업(예를 들어 넷웨스트, 알리안츠 등)의 실제 보고서 문장과 사례를 실명으로 인용·표창한다. 개선이 필요한 나쁜 공시 사례가 있을 때도 기업명을 밝히지 않고 ‘숫자 위주 평가보다 정성적 요소를 기술하라’는 식의 개선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 최근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스튜어드십’의 정의가 변경되었다고 들었다. 배경이 무엇인가.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2026년부터 적용되는 개정 코드에서 정의를 변경했다. 기존 정의가 ‘사회, 환경, 경제 전체에 대한 이익 창출(Benefits for society, environment, economy)’이었다면, 개정된 정의는 ‘장기적인 지속가능한 가치(Long-term sustainable value)’다. 개정 배경은 모든 주주활동 시 매번 모든 환경·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시장 피드백을 수용했다. 투자자가 각자의 타임라인과 우선순위에 맞게 기후변화, 넷제로 등의 이슈를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여지를 넓혀준 것이다. 이는 2026년부터 적용되고, 첫 보고서는 4월 제출된다.”

- 기업 이사회는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영국 지배구조 코드의 ‘내부통제(Internal Controls)’ 개정 조항(Provision 29)의 핵심은 이사회가 재무, 운용, 준법을 포함한 주요 내부통제의 유효성을 매년 재무상태표일 기준으로 직접 서명하고 선언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사베인스-옥슬리법(SOX) 같은 엄격한 정부 검증이나 외부 감사 의무화 방식이 아니다. 회사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주요 통제를 기업 스스로 정의하고, 감사위원회와 내부감사를 활용해 점검하는 이사회 책임(Board Accountability) 구조다. 이사회는 리스크와 이를 완화하기 위한 통제 장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주요 내부통제가 유효했다고 이사회가 직접 선언함으로써, 이사회는 단일체(as a unit)로서 최종 책임을 지게 된다. 현재 기업들의 시스템 구축 시간을 고려해 시행을 1년 유예한 바 있으며, 이에 따른 첫 보고는 2027년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 인공지능(AI) 지배구조(AI Governance)에 대한 FRC의 입장은 무엇인가.

“AI, 특히 생성형 AI는 환각 등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AI의 활용 현황을 파악하고 명확한 감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FRC의 입장이다. 현재 기업들의 AI 관련 보고가 다소 부족한 편이며, 더 많은 공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이사회 내에 ‘AI 전담 이사’를 두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AI는 위험이자 기회이며 이사회 전체의 공동 책임(collective agreement) 영역이다. 전담자 한 명을 두면 다른 이사들이 관여를 줄이고 미뤄버리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사회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적극 활용하되, 이사회 차원에서 위험 관리 및 감독 정책을 세워야 한다. FRC가 발간한 <사이버 지배구조 실무 규범(Cyber Governance Code of Practice)>처럼 AI 분야에서도 향후 이와 유사한 가이드라인과 툴킷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 스튜어드십 코드를 담당하며 실무적으로 아쉬운 점은.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자율성과 유연성(flexibility)을 부여하는 원칙 기반의 코드를 제공하면, 그들은 ‘제발 체크리스트를 달라,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일일이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임에도 스스로 고민하려 하지 않고 규정집만 요구하는 태도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 시장 역시 비슷한 고민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 한국 시장 및 정책 당국을 위한 최종 제언을 한다면.

“지속적인 이해관계자 소통이 필요하다. 정책 수립 및 개정 시 연기금, 자산운용사, 기업 등 시장 참가자들과 사전 소통하여 불필요한 보고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제도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세웠다면 시장에 안착될 때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율성과 주도성 회복이다. 정책 당국이 모든 정답과 체크리스트를 정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기업과 투자자 스스로 자신들의 비즈니스 스토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