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2020. 12. 07. 사진=연합뉴스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2020. 12. 07. 사진=연합뉴스
여야가 204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선형 감축 경로에 따라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매년 일정한 규모로 온실가스를 줄여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국책사업에서 늘어날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축 경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감축 수단만으로도 달성이 쉽지 않은 2035년 NDC가 추가 전력 수요로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는 지난 7월 22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다. 개정안은 2018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감축목표를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 범위로 설정했다. 하한은 2050년 탄소중립까지 매년 일정한 규모로 배출량을 줄이는 선형 감축 경로에 맞춰 정해졌다. 개정안은 2031년 이후 정량적인 감축 기준이 없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는 202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이다.

중장기 목표 설정 때 ‘감축 수단의 확보 수준 및 이행 여건’을 고려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감축기술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상용화를 정부가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새로 마련했다. 2040년 목표의 상한과 하한 차이는 11%포인트로 기술 발전과 산업 여건에 따라 감축 수준을 조정할 여지를 뒀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주장해 온 감축 경로는 산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산업 현실을 고려한 목표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30GW 수요, 배출량은 ‘검토 중’

감축 경로는 법에 담겼지만 늘어날 전력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량은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충청권 AI 데이터센터, 영남권 피지컬 AI 사업 등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대표적 변수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이 본격화하면 신규 전력 수요가 30기가와트(GW)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야당 의원은 이날 소위에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를 24GW로만 가정해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할 수 있다며 정부가 추산한 추가 배출량을 물었다. 정부 측은 “전원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 늘어날 전력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완하고 있다. 추가 전력을 어떤 전원으로 공급할지에 따라 배출량도 크게 달라진다. 전력 공급 방식과 배출 증가분을 확정하기 전에 중장기 감축 경로부터 법률에 담은 셈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7월 15일 메가 프로젝트로 국가 전력 수요의 24%인 24.7GW의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AI 데이터센터가 18.4GW, 반도체 공장이 6.3GW다. 연구소는 NDC 이행에 따라 전력 믹스가 개선되더라도 전력 부문 간접배출량 2145만t과 반도체 공정 등 직접배출량 445만t을 합쳐 2035년 추가 배출량이 2590만t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 전력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전량 충당하려면 100GW 안팎의 신규 설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2035년 목표도 빠듯

문제는 메가 프로젝트의 추가 배출을 제외하더라도 2035년 NDC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7월 10일 발간한 <2035 NDC 주요 부문 감축 경로 점검> 보고서에서 “2025년 기준 감축 수단이 적용된 통계 추세와 전망을 반영하면 2035년 NDC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35년 상한 목표인 61%에 대해서도 “가용한 감축 수단을 최대한 적용해야 하고, 과거 경제위기로 경제·산업 활동이 위축됐을 때 나타난 수준의 배출량 감소가 지속돼야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감축 계획만으로도 목표 달성이 빠듯한 상황에서 메가 프로젝트의 추가 수요까지 현실화하면 필요한 감축량은 더 늘어난다. 무탄소 전원 확대가 추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배출허용총량과 할당 기준을 더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 제조업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 임원은 “무탄소 전원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은 채 NDC 하한에 맞춰 배출권거래제의 배출허용총량과 할당 기준을 강화하면 기업이 자체 감축이나 배출권 구매로 떠안아야 할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감축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배출권 가격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범위형 목표를 실제 정책에 적용할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개정안은 2040년 감축 목표를 69~80% 범위로 제시했지만 어떤 여건에서 하한을 적용하고 언제 목표를 상향할지는 대통령령과 후속 계획에 맡겼다. 산업·기술 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장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규제 강도를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와 감축 계획을 세우는 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높은 수준의 NDC 목표를 수립한 유럽연합(EU)도 산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출권거래제(ETS)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7월 1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EU는 당초 2040년까지 배출허용총량을 매년 4.3% 줄이도록 했지만 개편안에서는 연간 감축률을 2031~2035년 약 3.7%, 2036~2040년 약 1.7%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다. 장기 감축 목표는 유지하되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비용을 고려해 규제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이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주요 관계자는 “목표 시점이 먼 만큼 기술 발전과 경제 여건을 고려해 NDC를 범위형으로 설정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메가 프로젝트의 추가 전력 수요가 국내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달할 수 있는 만큼 배출 영향을 최대한 수치화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수급기본계획과 NDC 이행계획에 추가 수요와 이를 상쇄할 감축 방안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NDC 설정과 관련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은 8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번 개정으로 국내 탄소중립 정책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선언에서 산업별 감축량과 투자비용을 구체적으로 배분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