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러닝 - 일본의 거버넌스 혁신①
한 노신사가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한 증권사에서 일본 닛케이 지수를 보여주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노신사가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한 증권사에서 일본 닛케이 지수를 보여주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21일 일본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는 ‘기업 거버넌스 코드 2026년 개정판’을 확정·공표했고, 같은 날 경제산업성은 ‘성장투자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도쿄증권거래소는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요청에 관한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세 자료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중장기 성장전략에 따른 경영자원 배분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이 설명해야 할 자원 배분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거버넌스 코드는 이를 논의하고 감독할 이사회의 책임을 구체화했다. 성장투자 가이던스는 경제적 이익인 EP(Economic Profit)를 중심으로 투자와 사업 재편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자본비용과 자본효율성을 인식시키는 단계를 넘어, 자원 배분의 기준과 실행·감독 체계를 정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본 배분, 이사회가 논의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코드는 2015년 제정 이후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2018년에는 자본비용, 사업 포트폴리오, 정책보유주식이 주요 경영과제에 포함됐고, 2021년에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 지속가능성 요인에 대한 대응이 강화됐다. 이번 개정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성장 경로와 경영자원 배분을 이사회 핵심 의제로 명시했다.

앞으로 이사회는 회사가 지향하는 중장기 성장 방향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검토해야 한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인적자본과 지식재산 투자,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이 성장전략에 부합하는지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경영진이 마련한 계획을 승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자원 배분이 공표한 전략과 일치하는지 검증하고 감독하라는 의미다.

성장투자와 주주환원도 서로 분리된 의사결정으로 보지 않는다. 기업의 성장 단계와 투자기회, 재무 상황을 고려해 하나의 자원배분 체계 안에서 판단하도록 했다. 현금과 금융자산, 실물자산 역시 성장전략에 맞게 활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다만 기업이 보유 목적과 적정 수준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사업 운영과 유동성 확보를 위한 현금 보유도 정당한 자원 배분으로 인정된다.

코드의 운영 방식도 이에 맞춰 변경됐다. 원칙 준수·예외 설명(comply or explain)의 대상은 상위 원칙 중심으로 정비하고, 세부 내용은 별도의 해석지침으로 분리한다. 형식적 준수 여부보다 기업의 사업 특성과 성장단계에 맞는 판단과 설명을 중시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판의 핵심은 성장전략과 경영자원 배분의 수립뿐 아니라 실행과 사후 검증까지 이사회의 핵심 책임으로 명확히 했다는 데 있다.

경제산업성의 성장투자 가이던스(안)는 성장투자와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가이던스는 2014년 이토 리포트와 2015년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 도입 이후 일본 기업의 수익성, 주가, 자본효율성, 주주환원이 개선됐지만 그 성과가 충분한 성장투자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새로운 역설’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해결책으로 기업은 단기적인 자본효율성을 뜻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 및 투하자본이익률(ROIC)이나 주주환원 수준을 높이는 데 머물지 말고 경제적 부가가치의 총량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성장투자(연구개발과 설비 등)와 인적자본·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려 상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판매가격과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이나 투자 축소만으로 재무지표를 개선하는 방식은 지속적인 가치창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자본비용을 웃도는 수익이 기대되는 사업과 투자기회에 경영자원을 적극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판단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경제적 이익(Economic Profit, EP)이다. EP는 투하자본(IC)에 ‘투하자본이익률(ROIC)에서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자금조달비용)을 뺀 값’의 곱셈으로 나타난다(EP = 투하자본 × (ROIC-WACC)).

EP는 투하자본과 ROIC-WACC 스프레드를 함께 반영하는 지표라는 점에서 자본효율성과 가치창출의 규모를 동시에 평가할 수 있다. ROIC가 높더라도 투하자본이 적으면 창출되는 경제적 이익은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ROIC가 WACC를 상회하는 양(+)의 스프레드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투하자본을 확대하면 EP는 증가한다.

경제산업성은 EP를 투자자와 채권자에 대한 자본비용을 충당한 뒤 기업에 귀속되는 경제적 부가가치로 정의했다. 기업가치 제고의 핵심은 단순히 자본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지 않으며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사업과 투자기회에 경영자원을 배분해 EP, 즉 가치창출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자본비용을 하회하는 사업은 수익성 개선이나 매각 등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적절한 투자기회가 없을 경우에는 주주환원을 실시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원 배분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ROE이나 ROIC 향상을 위해 자산과 투자를 축소하는 이른바 ‘분모 축소형’ 자본효율성 개선과 구별되는 접근 방식이다.

도쿄증권거래소, 기업 경영자원 배분에 초점

도쿄증권거래소(TSE)는 지난 4월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요청에 관한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2023년 3월 프라임 및 스탠더드 시장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자본비용과 자본수익성, 시장평가를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개선 방침과 실행 상황을 투자자에게 설명하도록 요청한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요청’ 이후 약 3년간의 대응 현황과 향후 과제를 정리한 자료다.

이번 업데이트 자료에서 주목할 부분은 일본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과 ROE가 개선됐다는 성과 그 자체보다 TSE가 기업에 요청하는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2023년 요청이 자본비용과 시장평가를 경영에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2026년 업데이트는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정된 경영자원을 어디에 배분하고, 어떤 사업과 자산에서 회수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기업가치 제고의 논의가 자본비용을 의식하는 단계에서 경영자원 배분을 실행하는 단계로 확장된 것이다.

이를 위해 TSE는 기업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성장전략, 경영자원 배분, 보유자산, 이사회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日, 기업의 경영자원 배분을 묻는다


일본 기업가치 제고 정책은 진화 중

최근 발표된 세 자료는 경영자원 배분의 방향(TSE), 실행·감독 체계(거버넌스 코드), 투자와 회수의 판단 기준(성장투자 가이던스)을 상호 보완적으로 제시한다.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자본효율성 인식 단계를 넘어 자원 배분과 회수를 실질적으로 실행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일본 상장주식의 외국법인 등 보유 비중은 거버넌스 개혁 이후 2015년도 29.8%, 2018년도 29.1%, 2019년도 29.6%를 기록한 데 이어, 2020년도부터 30%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25년도 말에는 34.7%에 도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프라이빗 마켓에서도 사업부 매각과 분할 후 매각(카브아웃, carve-out), 전략적 기업 비공개화(take private), 행동주의 투자자와 사모펀드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인수합병(M&A) 시장 조사기관 레코프데이터(RECOF Data)에 따르면, 2025년 일본 기업 관련 M&A는 5115건, 거래금액은 35조7000억 엔으로 건수와 거래규모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외국인 보유 비중 확대와 M&A 시장의 활성화를 거버넌스 개혁의 직접적인 결과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기업과 투자자 간 대화를 제도화하고 성장전략과 경영자원 배분에 대한 설명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재편과 성장투자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온 노력은 일본 자본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제고하는 핵심 기반이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본 시장의 체질 변화는 2023년 TSE의 요청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 시장에 소개된 바와 같이 일본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5년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 도입 이후, 기업과 투자자 간 대화체계 구축, 이사회 역할 재정립, 자본효율성 제고에 관한 논의를 10년 이상 축적해 왔다. 최근 발표된 일련의 정책들은 이러한 거버넌스 개혁을 기반으로 기업가치 제고의 논의 범위를 경영자원 배분과 실질적인 성장투자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PBR은 기업이 단기적으로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목표지표가 아니다. 수익성, 성장 기대치, 자본비용, 재무구조, 그리고 시장의 신뢰가 종합적으로 맞물려 도출되는 결과지표에 가깝다. 따라서 PBR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수익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사업에 자본을 배분하며, 신뢰를 기반으로 시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경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본의 사례는 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본질이 PBR이라는 결과지표 자체보다 그 결과를 도출해 내는 제도와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기업과 투자자 간 지속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성장전략과 경영자원 배분 원칙을 구체화하고, 이를 이사회가 책임 있게 논의·감독하며, 성장투자와 구조적 사업재편으로 연결 짓는 일본 정책의 연속성은 한국이 밸류업 정책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제도적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아 오릭스생명보험 Sustainablity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