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판워스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 CEO는 이제 저탄소·자연친화적 전환에서 이사회가 얼마나 준비됐는가가 기업의 새로운 질문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사회가 전환에서 앞서가는 방법을 고려할 때 당장 해야 할 일과 그 궤적이 명확해진다.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서현정의 CSO 열전⑤ 에밀리 판워스,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 CEO
‘서현정의 CSO 열전’은 서현정 더보드파트너스 대표가 글로벌 기업의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와의 심층 대화를 통해 지속가능 경영과 리더십, 그리고 전략의 교차점에서 기업이 어떻게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지 탐구하는 기획이다. — 편집자 주
이사회가 기후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기후와 자연은 더 이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팀만의 의제가 아니다. 글로벌 이사회는 이제 기후와 자연을 전략, 자본 배분, 공급망, 평판, 그리고 장기 경쟁력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70개국 10만 명 이상의 이사회 디렉터를 연결하는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 네트워크,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Chapter Zero Alliance)가 있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출범한 이 네트워크는 현재 34개 챕터를 운영하며, 단순 교육기관이 아니라 실제 이사회실에서 질문을 던지고 의사결정을 경험한 동료 디렉터들이 서로 배우는 글로벌 커뮤니티로 설계됐다는 점이 본질이다.
한국 역시 지금 거버넌스 전환의 변곡점에 서 있다. 상법 개정 논의, 독립이사 역할 강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로드맵은 이사회 책임의 범위를 빠르게 재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ESG는 공시·실무 대응 중심으로 운영되고, 이사회 안건에서는 재무·사업 전략과 분리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더보드파트너스 서현정 대표가 에밀리 판워스 CEO와 직접 대화를 나눴다.
서현정 × Emily Farnworth “이사회가 기후를 의제에서 제외하는 시대는 끝났다”
서: WEF에서 처음 이 네트워크를 구상했고, 지금 CEO로 조직을 이끌게 되셨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에밀리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는 2019년, 소수의 헌신적인 이사회 독립이사들의 확신에서 시작됐습니다. ‘더 나은 기후 거버넌스는 더 나은 이사회 대화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우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WEF와 협력하며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영국을 시작으로 챕터가 자발적으로 생겨났고, 오늘날 70개국 34개 챕터, 10만 명 이상의 이사회 디렉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됐습니다. WEF 기후 이니셔티브 총괄로서 이 네트워크의 출범을 이끈 저는 이 아이디어가 글로벌 운동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지금 이 얼라이언스가 다음 성장 단계로 나아가는 시점에 CEO로 합류하는 것은 직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도전입니다. 이사회 거버넌스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이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서현정(이하 ‘서’):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는 2019년 설립 이후 6년 만에 70개국 10만 명의 이사회 디렉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됐습니다. 왜 이사회가 기후 행동의 가장 결정적인 레버입니까.
에밀리 판워스(이하 ‘에밀리’): “더 나은 기후 거버넌스는 더 나은 이사회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네트워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사회 디렉터들은 자본 배분, 리스크 감독, 전략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경영진의 일상 운영을 넘어 장기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독립성과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구입니다. 이사회 디렉터들이 어려운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이해할 역량을 갖출 때, 조직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실질적으로 바뀝니다.”
서: 올해 1월 다보스에서 WEF와 함께 ‘기후 및 자연 거버넌스를 위한 핵심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이사회가 필요로 하는 경영 플레이북’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에밀리: “감독(oversight), 전략(strategy), 리스크와 기회(risk and opportunity), 투명성(transparency), 이 네 가지를 이사회의 핵심 기능에 연결할 때 비로소 기후 거버넌스가 작동합니다. 이 원칙들은 이사회가 오늘의 도전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형성하는 역할로 나아가도록 설계됐습니다. 리스크를 더 명확히 보고, 자원 효율을 통해 비용을 줄이며, 불확실한 세계에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 잡는 것이 이사회에 주어진 경쟁 우위입니다. 교과서가 아닙니다. 이사회실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플레이북입니다.”
서: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가 70개국에서 이사회를 관찰해 왔습니다. 2026년 현재, 이사회가 기후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 5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에밀리: “최근 몇 년간 이사회실의 대화는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사회 디렉터들은 더 이상 기후가 의제에 올라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후와 자연을 전략, 리스크 감독, 자본 배분, 임원 인센티브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기후 리스크가 공급망, 자산, 수익, 평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재무적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전환에는 강력한 통찰이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비즈니스 재앙이지만, 기후 행동은 비즈니스 기회입니다. 이제 질문은 ‘수익이 위기에 처할 것인가’가 아니라, ‘저탄소·자연친화적 전환에서 이사회가 얼마나 준비됐는가’입니다.”
서: 한국과 아시아 이사회의 기후 거버넌스 현황을 솔직하게 평가한다면.
에밀리: “아시아 전반에서 기후 거버넌스의 진화 속도는 빠르지만 불균등합니다. 한국은 거버넌스 전환의 과정에 있습니다. 상법 개정이 독립이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촉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ESG가 실무팀의 영역에 머물고 이사회의 전략적 대화로 충분히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사회 역량 강화에 과제가 있습니다. 한국의 이사 커뮤니티는 역사적으로 분산되어 있었고, 이사·리더를 위한 전문기관인 인스티튜트 오브 디렉터스(Institute of Directors) 같은 전문기관의 인프라가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 자문기관과 전문 플랫폼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그 공백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사회 역량 강화와 기후·자연 거버넌스를 전략적 감독의 핵심으로 내재화하는 것이 한국 이사회 앞에 놓인 핵심 과제입니다.”
서: 지난 4월 상하이 기후주간에서 ‘정책 신호가 명확할수록 장기 투자의 기반이 된다’고 하셨는데, 한국도 올해 상법 개정을 확정했고 공시 의무화 로드맵이 논의 중입니다. 한국의 독립이사들은 이 규제 환경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에밀리: “상하이에서 제가 강조한 것은 정책 신호의 명확성이 장기 투자의 기반이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이 그 역할을 하듯, 한국의 상법 개정과 공시 의무화는 이사회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신호입니다. 이것을 부담으로 읽는 이사회와 기회로 읽는 이사회의 차이가 5년 후 경쟁력의 차이가 됩니다. 독립이사에게 가장 필요한 전환은 하나입니다. 전통적인 재무 감독의 역할에서 기후, 자연, 공급망, 평판을 아우르는 360도 리스크 감독으로의 확장입니다. 규제를 따라가는 독립이사가 아니라, 규제에 앞서는 질문을 먼저 던지는 독립이사여야 합니다.”
서: 많은 한국 기업이 지속가능성 공시를 여전히 공시팀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이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밀리: “공시팀이 아무리 좋은 숫자를 만들어도, 이사회가 그 숨겨진 전략적 리스크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후 전략이 이사회 의제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탄소중립 로드맵도 경영진 책상 위의 문서로 남습니다. 이사회가 장기적 가치와 회복탄력성 관점에서 이 문제를 소유할 때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서: 2026년 1월 발표된 ‘이사 의무 내비게이터’ 보고서는 기후·자연 리스크 고려가 이사의 주의 의무라고 결론짓습니다. 여전히 규제를 관망하는 이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시겠습니까.
에밀리: “‘관망’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닙니다. 이사회 이사들에게는 특정 지속가능성 법제와 무관하게, 중요한 기후·자연 리스크를 고려할 주의 의무(duty of care)가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공시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입니다. 나중에 기준에 미달할 위험을 줄이고, 규제당국과 이해관계자에게 선의의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투명성과 솔직한 보고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서: 미국발 ESG 백래시(반발)가 거셉니다. 일부 기업은 지속가능성 공약을 철회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에밀리: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재조정(recalibration)입니다. ESG 언어가 정치화됐지만 물리적 기후 리스크, 공급망 교란, 에너지 안보라는 근본적 동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정학적 불안정 자체가 기후·자연 리스크를 시장 교란의 즉각적 요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기후와 자연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들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지금 ‘그린 허싱(green hushing·녹색 침묵)’을 선택하는 이사회는 가치사슬 회복탄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이사회는 이것이 ESG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서: 결국 E가 아닌 G의 시대라는 말씀입니까.
에밀리: “거버넌스(G)는 ESG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습니다. 환경(E)과 사회(S)에 대한 논의는 지난 10년간 깊어졌지만, 거버넌스는 여전히 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입니다. E와 S를 실질적으로 실행하려면 결국 G가 작동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실패 패턴은 위임(delegation)입니다. ESG를 담당팀에 맡기고, 이사회는 연 1회 보고를 받는 구조는 감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가 자본 배분, 리스크 감독, 임원 인센티브와 연결되는 순간 비로소 G가 작동합니다. E는 목표이고, G는 그것을 실현하는 엔진입니다.”
서: 이사회가 진짜 바뀌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까. 어디서, 무엇이 그 신호였습니까.
에밀리: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쌓여 온 발걸음들입니다. 기후가 틈새 주제에서 많은 이사회의 사고방식에 단단히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올해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그 변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부정적 헤드라인에 압도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화 안으로 들어가면 훨씬 균형 잡힌, 심지어 낙관적인 그림이 펼쳐집니다. 10년 전에는 없었던 기술들, 이사회실에서 달라지는 태도들, 실질적인 행동 사례들 말입니다. 사고방식이 바뀌었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어떻게 하면 경쟁자보다 앞서 기후 행동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가’로. 이사회가 전환에서 앞서가는 방법을 묻기 시작할 때 궤적이 명확해집니다.”
서: 10만 명의 이사회 이사들과 일해왔습니다. 실제로 이사회를 바꾸는 이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에밀리 “공통점은 결국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장기적 청지기(steward) 마인드입니다. 단기 실적이 아닌 조직의 장기 회복탄력성과 가치 창출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둘째,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용기입니다. 답을 모두 알지 못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가정에 도전하고, 불편한 질문을 먼저 꺼낼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셋째, 가장 간과되는 요인인데 겸손함입니다. 배우려는 의지, 유연하게 적응하는 열린 마음. 용기와 겸손함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이사회가 변화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이끄는 기구가 됩니다. 이사회를 바꾸는 디렉터는 360도 시각으로 운영 환경을 읽고, 전환을 위협이 아닌 조직이 경쟁 우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봅니다. 그런 이사가 있는 이사회는 다릅니다.”
서: 마지막으로, <한경ESG>를 읽는 한국의 이사회 디렉터, C레벨 경영진, 전문가들에게 직접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에밀리: “기후와 자연은 관리해야 할 리스크이기 이전에, 조직을 회복탄력적이고 번영하는 미래로 이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스마트한 기업들은 이미 전환 경로를 점검하고, 기후·자연 거버넌스 관행을 내재화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의 70개국 이사회 네트워크가 축적해 온 지식과 동료 디렉터들의 경험이 한국 이사 커뮤니티와 연결될 때, 한국 이사회의 진화는 더 빠르고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사회 디렉터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기후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서현정의 코멘터리 | 현장의 질문이 이사회로 향할 때
에밀리 판워스와의 대화에서 내가 포착한 흐름은 ‘질문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글로벌 이사회실에서는 10년 전과 다른 대화가 오가고 있다. 탄소 배출량 보고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이사회가 먼저 묻는다. 우리 공급망의 기후 시나리오는 검토됐는가. 자본 배분 결정에 자연 리스크가 반영됐는가. 경영진의 인센티브는 전환 목표와 연결돼 있는가. 챕터 제로 얼라이언스가 70개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장면들이다. 기후와 자연이 이사회의 언어가 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전환을 이끈 것은 규제도, 교육도 아니었다.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지고 이사회실에서 직접 부딪쳐 본 동료 디렉터들의 경험이었다.
한국은 이 전환의 임계점에 서 있다. 규제는 방향을 정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의 이사회 디렉터들이 글로벌 동료들과 같은 질문을 나누고, 같은 언어로 사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후와 자연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의 이사회가 반드시 소화해야 할 전략 언어가 됐다. 충분한 수의 한국 이사회가 그 방향으로 움직일 때—임계 질량(critical mass)이 만들어질 때—한국 이사회의 진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서현정 더보드파트너스 대표 더보드파트너스(The Board Partners)는 국내 최초의 독립 이사회 자문 전문기관으로, 이사회 평가, 사외이사 교육, 이사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현정 대표는 전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 상무, 글로벌 컨설팅사 ERM 한국 대표, 한화자산운용 글로벌 전략팀장, 유엔 PRI 한국 대표 매니저를 역임한 지속가능 전략 및 이사회 거버넌스 전문가다.